2021/12/14

양산형 인류세 논문의 활용 방안



아르바이트 때문에 인류세 관련 자료들을 보았다. 내가 예전에 페이스북에다, 곧 지구가 망할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 왜 논문에다가 인류세 가지고 정신 나간 소리나 쓰고 자빠졌느냐고 투덜거린 적이 있었는데,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인류세와 관련된 아르바이트가 들어왔다. 내 글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맡긴 것은 아닐 것이었겠지만, 어쨌든 괜히 뜨끔하기는 했다.

인류세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선뜩 승낙한 것은, 내가 그와 관련하여 정상적인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기 전에 2016년 『지질학회지』 제52권 제2호에 실린 「인류세(Anthropocene)의 시점과 의미」라는 리뷰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알기로, 2016년 이후에 나온 인류세와 관련된 정상적인 글 중 대부분은 그 논문으로 수렴한다. 그 논문을 약간 변형한 뒤 몇 가지 정보만 추가하면 쉽게 아르바이트를 끝낼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글이 그 논문으로 수렴하기 때문에 다른 글을 많이 읽어봐야 사실상 논문 한 편을 여러 번 읽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인류세 관련 자료는 크게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2016년 논문과 그 논문과 내용이 상당 부분 겹치는 글, (2) 교육학 논문, (3) 정체를 알 수 없는 논문. 인류세와 관련된 교육학 논문은 인류세와 관련된 수행평가 활동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정리한 것이다. 인류세를 이해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기획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인류세와 관련된 정체불명의 논문에는, 내가 이해하는 한, 쓸모 있는 내용이 거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런 논문들은 논문의 절반이 수식어구로 되어 있고 나머지 절반은 철학자 이름과 이론 이름과 개념 이름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수식어구와 이름들의 대향연이다. 어떤 논문에서는 철학 논문도 아닌데 한 문단에서만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라캉, 소쉬르, 부르디외, 데리다, 칸트가 등장한다. 물론, 그 사람들이 왜 등장하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수식어구와 이름들의 대향연이 단순히 한 개인의 인생 낭비로만 점철된 것이라면 그냥 그런가보다 할 수도 있다. 나도 인생의 대부분은 헛짓거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인생을 헛되이 보내는 것을 보면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다. 그런데 그런 논문들이 게재된 학술지는 여지없이 KCI 등재지이고 논문 맨 앞 쪽에는 “이 성과는 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이라고 써있다. 그런 논문의 저자들은 인생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 예산을 낭비했을 뿐이며,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문예창작 활동을 하면서도 실적으로 인정받기까지 했다. 알차게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식으로 정부 예산이 낭비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현실적으로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측면에서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학자들은 폐기물을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해왔다. 왜 논문은 안 되겠는가? 문예창작 활동의 부산물을 글쓰기 교육에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글쓰기 교육의 기본 목표는 글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최대한 짧고 단순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항상 정확한 이야기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공적 의사소통에서와 달리, 일상에서는 약간 부정확하더라도 따뜻하고 촉촉하게 말하는 것이 권장되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신건강이나 인간관계에 이로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친구가 나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보험에 가입하라고 권유한다고 해보자. 보험에 들지 않으면서도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고 확률이나 기대값에 비해 보험료가 비싼 것 같다고 정확히 말할 수 있는 판단력과 용기가 아니라 난처한 상황을 적당히 넘길 수 있는 개소리 능력이다. 이 지점에서 논문을 재활용할 여지가 생긴다. 아무 내용 없이 적당히 둘러대는 모호한 글쓰기 능력을 배양하는 데 그러한 논문들을 보조 교재로 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글쓰기 교실을 운영한다면, 수강생들에게 그러한 논문을 나누어주고 논문에 나온 표현을 참고하여 일상에서의 매우 뻔하고 단순한 말을 모호하고 촉촉한 표현으로 바꾸어오도록 과제를 내줄 것이다. 모범 답안에 가까운 사례는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 예(1):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 마이크 타이슨

→ 인간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적’ 도식으로 파악하는 것은, 그것이 발휘하는 ‘존재론적’ 힘에 주목하기 어렵게 만든다.

- 예(2): 회식 때 사장님이 “나는 짜장면”이라고 하자 다른 직원들도 모두 짜장면을 주문했다.

→ 축적과 발전의 무한성을 내면화한 사장님에 의해 발화된 ‘짜장면’이라는 언표는 양장피와 라조기를 향하는 직원들의 욕망을 막연한 믿음이나 소망으로부터 ‘사실적인’ 어떤 것 쪽으로 굴절시켰다.

- 예(3):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 한국 속담

→ 바다로부터 추출된 염화나트륨의 물질성, 즉 그것이 첨가된 요리에 가져올 미지의 치명적 변용은 형식화된 레시피의 포섭력을 훨씬 초과한다.

참고로, 위의 사례들은 내가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논문에 사용된 표현을 구글에서 검색되지 않을 정도로만 변형한 것이다.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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