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의 어느 영화소개 채널에서 영화 <은교>를 소개한 영상을 보고, 영화 <은교>를 다시 보았다. 몇 년 전에 처음 보았을 때는 신인 여배우가 고생한다는 생각 정도만 들었는데 최근에 다시 보니 영화가 한두 군데 이상한 게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안 된다.
우선, 은교(김고은 분)가 등장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이적요(박해일 분)가 밖에서 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어떤 여고생이 남의 의자에 앉아 쳐자고 있다. 지나가던 거렁뱅이가 대문이 열린 것을 보고 들어와서 잤다고 해도 말이 안 될 판인데, 멀쩡한 고등학생이 담벼닥에 사다리가 있다고 그걸 타고 남의 집에 들어와서 잔다니 말이 되는가? 남의 집에 들어오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왜 자기 집을 멀쩡히 두고 그것도 대낮에 남의 집에서 자는가? 이것부터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여고생인 은교가 70대 노인 이적요에게 그렇게 엉겨붙는 것부터 말이 안 되지만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말이 안 되니 이 정도는 그냥 그렇다고 치자. 은교는 잘 곳이 없다면서 왜 비 오는 날 굳이 이적요의 집에 찾아오는가? 은교가 말했듯이, 은교는 엄마에게 혼나고 집에 나온 날은 친구 집에서 잔다. 친구 집이 있는데 굳이 할아버지 혼자 사는 집에 자러 온다는 것이 있을 법한 일인가? 비가 오고 우산도 없으니, 은교가 멀리 떨어진 이적요의 집까지 찾아오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는 친구 집에 가는 것이 훨씬 더 상식적이다. 더 말이 안 되는 것은, 이적요가 자고 일어나보니 은교는 이적요의 이불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은교는 간밤에 천둥이 쳐서 무서워서 할아버지 겨드랑이에 숨었다가 잠들었다고 설명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서지우가 은교를 자기 집에 불러서 개수작하려고 아프니 약을 사오라고 시킨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여자 혼자서 성인남자 혼자 사는 집에 가지 않고 친구나 아는 언니 등을 대동할 법한데 은교는 굳이 혼자 간다. 전혀 말도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꽤나 이상하다.
이적요는 <은교>라는 알페스를 쓰고 서지우는 이적요가 쓴 알페스를 자기 이름으로 발표한다. 이에 대해 은교는 자기를 주인공으로 한 알페스를 돈 주고 사보고는 자기를 그렇게 예쁘게 그려줘서 고맙다고 한다. 은교는 정신이 정상적으로 박힌 애인가?
소설 『은교』가 젊은 여자에 대한 욕망을 다룬 소설이든 늙어가는 슬픔에 대해 쓴 소설이든, 나는 소설을 안 읽어봐서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인지는 모른다. 다만 영화 <은교>는 은교의 등장부터 끝까지 말이 안 되고 이상하다. 10대 소녀에 대한 70대 노인의 욕망이 이상하다는 것도 아니고 10대 소녀를 둔 두 남자의 질투나 갈등이 말이 안 된다는 것도 아니다. 10대 소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시종일관 하면서도 그러한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영화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물론, 은교가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는 은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영화 속의 두 남자 주인공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모두 설명된다. 이적요의 늙어가는 슬픔을 부각하기 위해 어린 은교가 거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황당하게 등장해야 하는 것이고, 이적요가 은교에 대한 이상한 상상을 하는 것이 정당화되어야 하니까 은교가 이적요에게 헤나를 그려준 것이고, 은교가 이적요에게 헤나를 그려줘야 하니까 굳이 비 오는 날 은교가 이적요의 집에 찾아와야만 하는 것이고, 서지우가 은교와 뭔 짓거리를 해야 하니까 은교는 굳이 혼자서 성인남자 혼자 사는 집에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은교가 이러한 일련의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도 희수(신민아)에게는 강 사장(김영철) 말고도 따로 젊은 애인이 있는데, 영화 <은교>에서 은교에게는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고 이웃도 없고 주변 어른도 없다. 이 또한 위와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와 서지우의 여러 가지 사회적인 관계가 드러나지만 은교와 관련된 어떠한 다른 사회적 관계도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은교가 철저히 이적요와 서지우의 욕망에 따라 행동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은교는 “여교생이 섹스를 하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은교가 왜 외로운지, 얼마나 외로운지는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영화 <은교>에서 보이는 어린 은교에 대한 시선이 어떠네 불편하네 하며 말하는 것은, 영화를 보니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는 말을 요새 유행에 맞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는 남자 주인공들이 은교를 보는 시선 같은 것이 아니라, 은교라는 인물 자체가 두 남자를 뒤치다꺼리 해주는 인공지능 다용도 가사로봇 정도로 나왔다는 점이다.
(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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