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전남 신안을 방문했을 때 전남도청 직원들이 과잉의전을 했다고 비판받고 있다고 한다. 도청 직원들은 무슨 헛짓거리를 했는가?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도청 직원들이 직접 만든 플래카드에는 “그거 알아요? 저 굴 좋아하는 거. 문재인 얼굴”, “문재인 너는 사슴. 내 마음을 녹용”, “문재인 별로. 내 마음의 별(星)로” 등의 문구가 담겨 있었다. 현수막에도 “대통령님은 우리의 행복”,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공무원들이 현수막에 썼다는 문구를 보니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게 뭔 짓거리이며 찬양 문구가 왜 다 저 모양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문재인이 잘 생겼는지를 가지고 시비를 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사건에서 제일 흥미로운 지점이다. 도청 직원들이 문재인이 정치를 잘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만들었다면 분명히 문재인이 정치를 잘 하는지 여부를 두고 지지자와 반대자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을 텐데, 문재인이 잘 생겼다는 내용으로 현수막을 만들자 공무원의 과잉 의전만 비판할 뿐 어느 누구도 문재인이 잘 생기지 않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여느 한국 언론사의 기사처럼 이 기사도 어김없이 네티즌 의견이라고 하여 신문사에서 원하는 댓글을 취사선택했는데, “북한 의전을 보는 것 같다”, “명백한 과잉 의전”, “공무원이 저랬다니 충격이다”라는 비판을 전할 뿐 문재인이 잘 생기지 않았다는 비판은 전하지 않는다. 그만큼 문재인이 잘 생겼다는 데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정치적 판단이든 찬반 의견이 갈리게 마련인데 문재인이 잘 생겼다는 데는 찬반 의견이 갈리지 않는다. 평양냉면이 맛있느냐 함흥냉면이 맛있느냐를 가지고도 피 터지게 싸우는데 문재인이 잘 생겼느냐를 두고는 논쟁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사람 외모에 대한 판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렴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 외모에 대한 판단이 갈린다고 사람들이 믿는 것은, 사람이 외모에 대해 극미한 차이를 가지고 분별할 정도로 예민하기 때문이지 전혀 다른 평가기준을 가지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설현이 예쁘냐 수지가 예쁘냐를 두고 싸울 수는 있겠으나, 이는 하버드대가 좋으냐 예일대가 좋으냐 싸우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외모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정말 잘 생긴 것이 아니라 어중간하게 잘 생겨서 심리적인 요소에 외모 판단이 좌우되는 것이다. 일정 선을 넘어가면 그 사람의 얼굴 사진을 보고 기분이 나빠지더라도 못 생겼다고 하지 않는다. 십몇 년 전쯤에 오세훈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었을 때 학부 동기가 분개했던 적이 있었다. 여자 동기였는데, 강남 아주머니들이 오세훈이 잘 생겼다고 찍었다고, 골이 비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비난했었다. 당시 나도 오세훈이 당선된 것이 유감스럽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동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세훈은 잘 생겼잖아. 강남 아줌마들이 어차피 한나라당 찍을 건데 이명박은 못 생겨도 찍었는데 오세훈은 잘 생기기까지 했잖아.” 동기도 오세훈이 잘 생겼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 외모에 대한 판단기준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지, 후천적인 영향에 의해 결정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하여간 문재인 외모에 관한 평가 같은 현상을 보면, 한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외모에 관한 미적 기준은 분명히 있는 것 같고 일시적인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획일적인 미적 기준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남-미녀 축에 못 드는 사람도 방송에 자주 나오게 한다거나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식의 상식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여야지, 마치 미적 기준 자체가 없거나 그러한 매우 일시적이거나 유동적인 것처럼 여기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면 안 될 것 같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주장이라고 해도 근거가 빈약하면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 링크: [아시아경제] 文 환영하는 전남도청 직원들 “우주미남 우유빛깔 문재인”
( www.asiae.co.kr/article/2021020615195304079 )
(202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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