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8

돌아온 화천이



설날 연휴 때 화천이 이마에서 혹은 사라지고 고름 같은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연휴라서 동물병원에 데려가지 못하고 연휴가 끝나자마자 화천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수의사 선생님은 화천이 이마에서 털을 일부 뜯어내고 환부에 소독약을 바르고 항생제 주사를 놓았다. 화천이 이마에 있었던 것은 혹이 아니라 농양주머니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수의사 선생님한테 화천이가 싸우다 상처가 생겨서 그렇게 된 것이냐고 물었는데, 수의사 선생님은 고양이들은 그렇게 자주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보니까 자주 싸우던데. 하여간 치료가 끝난 뒤 화천이 목에 고깔 같은 것을 씌웠다. 화천이가 상처 부위를 앞발로 긁으면 상처가 낫지 않기 때문에 고깔을 씌운 것이다. 수의사 선생님은 화천이가 살이 쪄서 다른 고양이들보다 목이 굵고 짧다고 했다.

목에 고깔을 끼운 화천이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방송에 나오는 고양이들을 보면 목에 고깔을 씌워도 걸어다니고 뛰어다니던데 화천이는 목에 고깔을 씌우자 한 발 앞으로 갔다 두 발 뒤로 가는 식으로 이상하게 움직였다. 마치 고장 난 로봇 같았다. 목에 고깔을 씌우니 화천이는 고깔에 걸려서 (골판지로 만든) 자기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화천이를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집 안에서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여기저기 고깔이 걸려서 걷다말다 했다. 목에 이상한 것을 씌웠다고 생각했는지 화천이는 집 안에 들어와서 뾰루퉁하게 삐친 것처럼 앉아 있었다. 사람이 있는 쪽을 등지고는 불을 꺼진 깜깜한 주방을 향하고 있었다.






화천이는 집 안에서 하룻밤 자고 나서 그 다음날 아침에 현관문 쪽으로 갔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뜻이다. 어차피 제대로 못 돌아다니니까 잠깐 밖에 나가게 했다. 밖에서 볼일을 보았는지 잠시 후에 화천이는 현관문 앞에서 다시 우리를 불렀다. 집 안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화천이는 집 안에 들어왔다.

나는 화천이 화장실을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전날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화천이 화장실을 점심 때까지 만들지 않고 있었던 것뿐이다. 화천이 화장실은, 전에 만들었던 것처럼, 턱이 낮은 상자에 근처 공사장에서 모래를 퍼서 만들 생각이었다. 점심 때쯤에 화천이가 현관문 밖으로 나가려고 해서 화천이를 현관문 밖으로 내보낸 다음 외발수레를 끌고 공사장에 나서 상자에 모래를 퍼 담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화천이가 보이지 않았다. 한 발짝 앞으로 걷고 두 발짝 뒤로 걷던 화천이가 그 사이에 없어진 것이다. 마당에도 없었고 뒤뜰에도 없었고 창고에도 없었고 집 근처에도 없었다. 그렇게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화천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화천이 목에 고깔만 씌우지 않았어도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어디 끼어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날이 밝자 화천이를 찾아서 집 근처며 논이며 밭이며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수렁에 빠졌나 살펴보고, 도랑에 빠졌나 살펴보고, 배수구 같은 데 들어가지 않았나 들여다보고, 덤불 같은 데 목이 낀 것은 아닌가 뒤져보고, 남의 집 창고 같은 데 기어들어가지 않았나 불러보았다. 그런데 아무데도 없었다. 내가 어머니하고 같이 “화천아, 화천아” 하고 부르면서 온 동네를 다니면 화천이가 사람 목소리를 듣고 “야-옹” 하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화천이는 반응이 없었다. 보통은 그렇게 부르면 대답을 하는데 화천이는 대답하지도 않았다.

목에 고깔을 끼고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것이 어디 간 줄도 모르겠으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어머니는 화천이를 살리려고 목에 고깔을 씌웠는데 고깔을 씌워서 화천이를 죽게 만든 것은 아닌지 걱정하셨다. 나는 화천이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놓았다. 언제 와서 먹을지 모른다고 해서 밥그릇에 사료를 쌓아놓은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몇 분이 지났을까. 어머니가 현관문 밖에서 소리를 질렀다. “〇〇아, 화천이 왔다, 화천이!” 밖에 뛰어 나가보니 화천이는 사료를 먹고 있었다. 화천이가 뭘 하며 돌아다녔는지 플라스틱으로 된 고깔이 너덜너덜한 채로 목에 달려 있었다..

화천이를 다시 보고 하마터면 울 뻔 했다. 화천이가 얼어 죽을까봐 걱정했는데 화천이는 멀쩡했다. 사실, 화천이를 찾아온 동네를 돌아다니느라 내가 얼어 죽을 뻔 했다.

고깔이 너덜너덜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고깔에 적응을 해서 그런지 화천이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온 화천이는 전기장판 위에 누워서 잤다.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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