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0

고려의 첩보력

     

『십팔사략』에는 고려의 첩보력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나온다. 송・요・금의 관계에 관하여 고려가 언급한 부분인데 다음과 같다.

 

“고려에서 사신을 보내 의원을 보내달라고 하여 휘종은 의원 2인을 보냈다. 돌아와서는, 실제로 의원을 요구한 것은 아니고 저쪽 고려가 중국이 여진과 함께 거란을 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고, 굳이 거란을 존속시켜주는 것이 중국의 변방을 방어하는 데 족할 것이며 여진은 욕심이 많아 교류할 수 없으니 응당 빨리 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휘종은 보고를 받고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송은 거란이 5대10국 시대부터 차지하고 있던 연운 16주를 탈환하지도 못하고 전연의 맹을 맺고 세폐를 뜯기고 있었다. 그러다 여진족들이 요(거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고 요의 상경을 격파한 뒤 국호를 ‘금’이라고 하자, 송의 휘종은 여진과 손잡고 거란을 공격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 즈음에 고려에서는 송에 의원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여 송에서는 의원 두 명을 고려에 보냈다. 그런데 고려에서 의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거짓말이었고, 고려에서는 송이 지금 뭔가 단단히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메시지를 은밀히 전달하기 위해 송의 의원을 불렀던 것이다. 당시 고려의 정세 분석은 여진과 손잡고 거란을 무너뜨리면 송이 여진을 감당 못하니까 거란을 존속시키면서 여진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고려가 우려한 대로 되었다. 송에서는 방랍의 난이 일어나서 나라가 개판이 되었고 개판이 된 와중에 군사를 일으키니 잘 안 되었고, 송과 금이 요를 공격해서 결국 요가 멸망했는데 그 와중에 송군은 요군에게 패배했고, 송은 금에 자기 대신 연경을 공격해달라고 했고, 결국 연경은 원래 약속과 달리 금이 함락했고, 송은 그런 식으로 계속 헛발질이나 하다가 결국 금군에게 수도까지 함락되어서 휘종과 아들인 흠종 등이 끌려갔다. 이를 ‘정강의 변’이라고 한다.

 

내가 역사를 잘 모르니까 『십팔사략』에 나온 고려에 관한 기록을 얼마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상당히 놀라운 내용이다. 고려에서는 당시 주요 나라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했을 뿐 아니라 송의 조정에서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도 파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고려가 송에 의원을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부터가 놀랍다. 그만큼 보안에 신경을 썼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기록을 보면 참 신기하다. 12세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통신 장비도 없었고 군사 위성도 없었는데 어떻게 정보를 수집했을까. 사람을 통해 정보를 수집해야 했을 텐데 어떻게 그런 첩보망을 만들고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취합한 정보 중 믿을 수 있는 정보와 믿을 수 없는 정보를 구분하고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분석했을까.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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