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님의 정년퇴임 강연이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선물과 꽃다발, 그리고 졸업생과 지도학생들이 만든 롤링페이퍼를 드리기로 했다.
롤링페이퍼를 만들자는 제안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롤링페이퍼? 내가 아는 롤링페이퍼는, 학부생 때 MT 같은 데 가서 그 전날 뭔가 즐거웠던 추억을 남긴 것 같은 기분은 들지만 술을 하도 퍼먹어서 그 추억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때, 그래도 뭔가 추억할 만한 것이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만드는, 일종의 피상적 인간관계의 상징 같은 것이다. 남에게 뻔한 말을 써주고 나도 뻔한 말을 받는, 친해지자고 쓰지만 결국 친해지지 않는 사이를 나타내는 것이 롤링페이퍼인데 이번에 정년퇴임하시는 만 65세 선생님께 롤링페이퍼를 쓰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 일일까 의심했다. 내 예상과 달리 지도교수님은 롤링페이퍼를 받고 즐거워하셨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선생님께 롤링페이퍼를 전달하기 전에 다른 종이로 포장하는 일을 내가 했다. 포장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 쓴 메시지를 보았는데 다들 비슷한 내용이었다. 지도에 감사하고 정년퇴임을 축하하는 내용이라 비슷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남들과 약간 다르게 쓰기로 했다. 내용상으로는 다르게 쓸 수 없고 내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이기로 했다. 다들 감사 인사를 길게 쓰고 자기 이름을 “아무개 드림”이라고 간단하게 썼길래, 나는 감사 인사를 간단히 쓰고 “선생님의 학문적 늦둥이, 〇〇〇 드림”이라고 썼다.
(20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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