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동반 모임에서 밥을 먹는데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가 깻잎을 못 떼고 있으면 남편은 깻잎을 떼어주어야 하는가, 못 본 척 해야 하는가?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몇 초 동안 생각했다. ‘뭐지? 새로운 직관 테스트인가? 소시오패스 테스트인가?’ 정답은 떼어주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아저씨・아주머니들이 많이 보는 방송에 나온 내용이라고 한다.
깻잎을 떼어주는 행위에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다른 의미가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다른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깻잎에는 대마잎 같은 환각 성분도 없고 최음 성분도 없다. 깻잎을 떼어주면 남녀가 정분이 나는 것인가? 내가 그 때 그 여자를 만났을 때 한정식 집에 데러가서 깻잎을 떼어주었어야 했던 것인가? 깻잎을 떼어주는 행위가 마치 미묘한 사이인 성인 남녀가 야간에 라면 섭취를 권유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인가?
여러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중 깻잎 테스트이 어떤 것을 드러내는지 알 수 있는 자료를 찾았다. 바로 박범신의 소설 『소소한 풍경』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소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간장에 절인 깻잎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 사법고시가 깻잎 한 장을 떼어내려고 여러 번 젓가락질을 한다. 내 눈이 사법고시의 눈과 우연히 마주친다. 사법고시가 어색하게 웃는다. “얘들은 무리지어 있는데 이쪽은 혼자니 안 되는 거지요.” 나는 깻잎의 무리를 젓가락으로 눌러준다. “자요!” 비로소 사법고시 젓가락 끝에 깻잎 한 장이 떨어져 나오고, 우리는 마주 보며 웃는다.
“볼썽사납게 그게 뭐야!” 남자1의 목소리가 볼통하다. 식사 후 집으로 돌아온 다음이다. “뭐가?” 내가 묻고 그는 벗은 재킷을 소파 위에 그야말로 볼썽사납게 내던진다. “그 자식 깻잎을 왜 네가 떼어줘?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떼어준 게 아니라 잡아줬는데.” “글쎄, 왜 잡아주냐고!” “왜가 어디 있어? 그 사람이 하도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지기에 무심코 잡아줬을 뿐이야.” “그 자식 침 묻은 젓가락이 닿은 깻잎이야. 기분 나빠. 웃기까지 하고.” “기분 상했다면 미안 해.” “네가 깻잎을 떼어줘야 할 남자는 이 세상에서 나 하나 밖에 없어. 내 아내잖아!” 그의 단호한 선언이다.
어디 깻잎뿐인가. 벗어 던진 옷을 하나하나 주워 걸어야 하는 일부터 열어둔 치약 뚜껑을 닫아주는 일, 섹스 후 뒷정리를 하는 일까지, 모든 일이 다 그렇다.
그는 나의 주인이다. 나는 그가 들어올 때 오로지 반드시 집에 있어야 하고, 그가 술 마시고 싶어 할 때 오로지 함께 마셔주어야 하고, 그가 원할 때 오로지 다리를 벌려주어야 한다. ‘오로지’가 남편으로서 그의 권리다. ‘유일한 서비스’가 아니면 그는 화를 낸다. 그의 아내니까. (70-71쪽)
소설이 실제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소설에 근거하여 추론해보자면,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깻잎 테스트를 하고 깻잎 분리 거부 행위를 강요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안 건강할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열등감이나 이상한 소유욕이 강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깻잎 테스트는 남녀 차이라든가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정신 건강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 참고 문헌: 박범신, 『소소한 풍경』, 자음과모음, 2014.
(201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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