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1

[과학철학] Ayer (1963), “What Is a Law of Nature?” 요약 정리 (미완성)

[ Alfred J. Ayer (1963), The Concept of a Person and Other Essays (New York: St. Martin’s Press), pp. 209-234.

Alfred J. Ayer (1956), “What Is a Law of Nature?”, Revue International de Philosophie 36, pp. 144-165. ]

■ 자연법칙은 무엇인가? [pp. 209-210]

- 참이거나 필연적 참이라고 해서 자연법칙은 아님.

• 예) 삼각형 세 각의 합은 180도다, 프랑스 제3공화국의 대통령은 남자다.

- 논리적으로 반증불가능하고 합의된 것은 법칙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음.

• 예) 폐쇄된 물리계에서 에너지의 합은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1법칙

- 통계적 일반화를 자연 법칙으로 간주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음.

- 주어진 명제가 자연 법칙의 형식인지 여부를 말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함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문제가 남음.

■ 견해(1): 자연 법칙은 초월자의 명령 [pp. 210-211]

- 오늘날 ‘자연법칙’이라는 표현에서 쓰는 ‘법칙’(law)은 법적 맥락과 도덕적 맥락에서의 사용과 매우 뚜렷하게 구분되지만, 항상 그렇게 구분했던 것은 아님.

- 홉스의 예

• 『리바이어던』에 나오는 법칙. ‘평화를 구하라’, ‘자신이 한 계약을 따르라’ 등. 홉스도 이러한 법칙이 필연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음.

• ‘이성의 명령’(dictates of Reason)을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법칙을 잘못 아는 것

• 법칙은, 신의 말씀이 전달된 것처럼, 정당하게 모든 것에 명령내리는 정리들(Theorems)

- 자연 법칙은 거역할 수 없는 초월자가 권위를 가지고 자연에 부과되는 명령이라는 견해

• 지금도 우세한 견해는 아니지만, 자연 법칙에 부과되는 필연성의 어떠한 형태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음.

■ 비판 [pp. 211-212]

- 비판(1): 자연 법칙을 초월적 존재의 명령과 동일시하는 분석은 형이상학이나 신학의 불확실성을 과학에 부담을 지우게 됨.

• 우리가 초월자의 존재를 믿을 좋은 이유가 없다면, 자연 법칙이 있음을 우리가 믿을 자격이 없어짐.

- 비판(2): 초월자의 존재를 안다고 하더라도, 자연 법칙을 신의 명령과 동일시할 수 없음.

• 우리는 초월자의 명령이 무엇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독립적 방법을 통해 자연 법칙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므로, 자연 법칙이 초월자의 명령이라는 가정은 쓸모없음.

- 비판(3): 거역하는 것이 불가능한 명령이라는 개념은 이상함.

• 명령의 본성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 불가항력인 명령에 귀속되는 필연성은 논리 법칙에 속하는 것

• 우리는 연역 추론할 때 실수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이 논리 법칙을 위배해서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

- 이러한 제한은 사건들 자체가 아니라 사건들을 기술하는 우리의 방법에 관한 것임.

• 이는 사건들 자체는 논리 법칙을 위반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

- 그러나 이는 오류일 수 있음.

• 어떤 사건으로 기술할 수 있는 것은 논리 법칙을 따르며, 사건으로 기술할 수 없는 것은 어떠한 사건도 아님.

■ 견해(2): 자연 법칙은 선험적・논리적인 법칙 [pp. 212-213]

- 많은 철학자들은, 어떤 명제가 특정한 종류의 사건이나 속성이 필연적으로 연결된다고 진술하는 경우에만, 그 명제가 자연 법칙을 표현할 수 있다고 간주함.

• 그러한 필연적 연결은 연역 논증의 전제로부터 결론이 따라나오는 결론과 같은 것이거나 매우 비슷한 것. 즉, 논리적 관계.

- 이러한 생각은, 자연 법칙이,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경험과 독립적으로 성립할 수 있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함.

• 자연 법칙이 순수하게 논리적 참이라면 이성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어야만 함.

■ 비판 [pp. 213-215]

- 흄: “모든 자연 법칙과 물체의 모든 작동이 경험에 의해서만 알려진다고 설득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이 성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마음은 원인 속에서 결과를 찾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결과는 원인과 전적으로 다르며, 따라서 원인에서 결코 발견될 수 없기 때문이다.”

• 구분되는 사건들의 결합이 가정하는 필연적 연결의 관계가 관찰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논변의 핵심이 아님.

• 그러한 관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이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논리의 문제

• 핵심은, 두 사건이 구분된다면, 한 사건의 존재로부터 다른 사건의 도출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는 평범한 항진명제.

- 흄의 반대자들은 자연 법칙으로 결합된 사건들이 논리적으로 서로 구분되고, 그러한 사건들이 논리적 관계에 의해 연합된다고 주장하고자 했음. 이는 명백한 모순임.

- 흄은 자연 법칙이 모순인 것이 적어도 상상가능하다고 함.

• 그러한 법칙을 표현하는 진술의 참은 선험적 확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경험적 문제라는 것.

- 반론: 논리학이나 순수 수학에서 어떤 진술이 입증되거나 반입증되지 않는 진술을 형식화하는 것이 가능함.

- 닐(W. C. Kneale)은 골드바하의 추측을 예로 듦.

• 아무도 이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지 못함.

• 이것이 참이라면 필연적 참이고, 이것이 거짓이라면 필연적 거짓임.

• 골드바하의 추측이 거짓으로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골드바하의 추측이 실제로 참인 것은 상상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음.

■ 에이어의 견해 [pp. 215-218]

- 에이어는 닐의 논변이 흄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아니라고 함.

- 흄이 원래 보여주고자 한 것은 주어진 일련의 명제들이 정말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님.

- 흄의 핵심은, 사건들이 구분된다고 말하는 것은 사건들이 논리적으로 관계된다고 말하는 것과 양립불가능하다는 것.

- 닐의 반박이 보여준 것은, 닐이 제시한 특정 사례의 경우, 흄이 실수했을 수 있다는 것

- 그러나 자연 법칙에 의해 결합되는 사건들 또는 속성들이 절대로 구분되지 않는가?

• 일단 일반화가 자연 법칙으로 받아들여지면 그것의 지위가 바뀜.

• 우리가 표현에 붙이는 의미는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님.

• 특정한 용어가 지시하는 어떤 종의 모든 대상이, 그 용어가 원래 포괄하지 않는 어떠한 속성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 속성을 포괄하게 하는 경향이 있음.

- 예: 자철석(loadstone)

• 자철석이 쇠를 끌어당긴다는 것은 경험적 발견이었음. ‘자철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특정한 물리적 외양과 구성을 가지는 한 대상만 지시했기 때문에, 자철석이 그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은 형식적으로 추론가능하지 않음.

• 그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됨에 따라, 자철석이 쇠를 끌어당긴다는 명제는 분석적으로 참임. 쇠를 끌어당기지 않는 물체는 자철석으로 적절하게 불리지 않을 것임.

- 예: 물의 화학적 구성

• 물의 화학적 구성이 H₂O라는 것은 필연적 참이 될 것임

• 그러나 화학적 구성이 D₂O인 중수(heavy water)는? 이것은 물이 아닌가?

• 중수가 물의 한 종으로 간주될 수 있다면, 물이 H₂O로 구성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

- 예: 뉴튼 역학 원리의 지위

• 뉴튼 역학에서 ‘힘’을 질량과 가속도의 곱으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그 원리를 분석적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임.

• 그러나 이 원리를 경험적인 것으로 만들도록 힘을 정의할 다른 방법은 없는가?

• 푸엥카레가 보여주었듯이, 다른 뉴튼 원리를 규약(convention)으로 간주할 수 있음.

• 경험의 시험을 부여하는 것은 전체로서의 체계

- 이는 자연 법칙이 된 명제가 논리적으로 필연적임을 인정해야 하지만, 이는 그것이 모두 참인 것은 아님을 함축함.

-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단계에서 물리과학이 통합되어서 전체적으로 공리화된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음.

• 기하학의 지위를 얻게 되어 모든 일반화가 필연적 참으로 간주될 것임.

• 경험이 그러한 체계를 반증할 수 없겠지만, 그러한 안전성은 무익할 것임. 반증되지 않는 대신 경험적 응용을 가지지 못하게 됨.

- 과학적 법칙을 논리적 필연성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지식을 향상시키지 않음.

• 예) 수소 1g당 분자 수백만 개가 들어 있다는 것을 정의의 문제로 만들면, 우리는 우리가 수소 1g을 정말 잘 파악했는지를 더 의심하게 됨.

• 우리가 정의에 더 많은 것을 넣을수록, 우리는 그 정의가 만족되었는지 여부에 대해 더 불확실해짐. 이는 법칙이 반증될 위험을 줄이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임.

p.814

우리가 어떤 것을 자연법칙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석적 참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험적이기 때문이다.

(20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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