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runo Latour (1993), We Have Never Been Modern, translated by Catherine Porter (Harvard University Press), pp. 1-11.
브뤼노 라투르, 「1장. 위기」,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홍철기 옮김 (갈무리, 2009), 17-45쪽. ]
1.1 하이브리드들의 증식 (The Proliferation of Hybrids)
1.2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다시 묶기
(Retying the Gordian Knot)
1.3 비판적 입장의 위기 (The Crisis of the Critical Stance)
1.4 1989년: 기적의 해 (1989: The Year of Miracles)
1.5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What Does It Mean To Be A Modern?)
1.1 하이브리드들의 증식 (The Proliferation of Hybrids)
1.2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다시 묶기
(Retying the Gordian Knot)
1.3 비판적 입장의 위기 (The Crisis of the Critical Stance)
1.4 1989년: 기적의 해 (1989: The Year of Miracles)
1.5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What Does It Mean To Be A Modern?)
10, 40
‘근대적’이라는 형용사는 시간에 있어서 새로운 체제, 가속, 파열, 혁명을 지칭함.
10-11, 41-42
이 글의 가설
‘근대성’이라는 말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실천을 지시하고, 이 두 가지 실천은 그 효과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분되어야만하지만 최근에는 이것들이 혼동되기 시작했다는 것
실천의 첫 번째 집합은 ‘번역’(translation)
두 번째는 ‘정화’(purification)
집합(1)은 라투르가 연결망이라고 부른 것에 대응
집합(2)는 근대적인 비판적 입장이라고 부른 것에 상응
11-12, 42-44
우리가 번역과 정확라는 두 가지 실천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근대인임.
우리가 정화 작용과 혼성과 작용에 주목하기만 한다면 그 즉시 우리가 현재에 근대인임을 멈추게 되고 우리의 미래는 변하기 시작함.
결국 우리가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다면 우리가 다른 자연-문화들에 대해 유지해온 고통스러운 관계도 변형될 것임.
상대주의, 지배, 제국주의, 허위의식, 제파 혼합주의(syncretism)는 다르게 설명될 것이고 그에 따라 비교 인류학을 변형시키게 될 것임.
제파 혼합주의: 인류학자들이 ‘대분할’(Great Divide)이라는 느슨한 표현으로 요약하는 모든 문제들
12, 44-45
번역, 또는 매개 작업과 정화작용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가?
라투르의 가설: 정화작용이 번역을 가능하게 만들어왔다는 것
두 번째 질문은 탈근대인 뿐만 아니라 다른 유형의 문화들과 관련됨.
라투르의 가설: 다른 문화들은 하이브리드들을 인식함으로써 그것의 증식을 배제했다는 것
세 번재 질문은 현재의 위기와 관련됨.
근대성이 분리와 증식이라는 이중 과제에 대하여 그렇게 효과적이었다면, 왜 우리가 진정ㅇ로 근대인이 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오늘날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것일까?
우리가 근대인이기를 멈춘다면, 우리가 더 이상 증식의 작용을 정화작용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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