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9

[과학사] McMullin (2011), “Kepler: Moving the Earth” 요약 정리 (미완성)

[ Ernan McMullin (2011), “Kepler: Moving the Earth”, The Journal of 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History of Philosophy of Science 1(1), pp. 3-22. ]

1. Two Astronomies

2. Copernicus

3. The Mysterium Cosmographicum

4. Apologia pro Tychone contra Ursum

5. Astronomia Nova, 1608

6. A Celestial Physics

7. Moving the Earth

1. Two Astronomies

중세 이슬람에서 그리스 천문학이 점진적으로 회복되면서, 그 자체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심원 모형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이심원 모형은 한쪽 모형의 장점이 다른 모형의 단점이었다. 이 문제를 다루는 두 가지 방식은 철학자와 천문학자의 방식이다. 철학자의 목표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고, 천문학자의 목표는 세계를 기술하고 예측하는 실용적인 것이다. 철학자와 천문학자 중 어디에 우선성이 있는가?

이슬람에서 기술적(tehnical) 천문학이 쇠퇴하면서 그 지식이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1260년대 로저 베이컨은 이븐 알하이삼의 방법을 번역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논의했으나 그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식 원리에 기반한 양적으로 정확한 천문학은 이루기 힘든 꿈이라고 보았다. carrier sphere의 실재가 주어졌다고 믿었기 때문d[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적 동심원이 관찰과 불일치한다는 점은 철학자들에게 중요하지 않게 보였다.

2. Copernicus

코페르니쿠스 자신은 자신의 체계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단순히 재정렬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확신했다. 코페크니쿠스의 이점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바깥쪽에 있는 행성이 제일 밝다는 것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그 밝은 행성이 가장 가까운 행성이라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한 행성과 다른 행성의 상대적인 크기와 역행 운동 빈도에 주목했다.

초기 저작에서 쿤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설명은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설명과 같다”고 했다. 쿤의 결론은 “태양 중심 천문학의 진짜 매력은 실용성보다는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적 이점이 코페르니쿠스와 동료인 레티쿠스(Georg Rheticus)를 태양중심설로 이끌었는가? 코페르니쿠스는 수성과 금정이 태양에서 멀리서 절대로 보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왜 행성이 움직이는지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3. The Mysterium Cosmographicum

케플러는 학생이던 1580년대에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장점이 계산이 아니라 행성 운동에 대한 그럴 듯한 물리학적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은 행성 운동에서 계산의 편리함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케플러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옛 체계에서는 행성들이 역행할 특정한 이유가 없으나, 코페르니쿠스는 그러한 이유를 보여준다고 보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작업이 가장 아름다운 규칙성을 그러냈기 때문에 원인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틀린 전제로 옳은 현상을 얻는다면 우연히 얻는 것이므로 무한히 틀린 가정을 추가하도록 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고 결국 자신의 근거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케플러는 생각했다. 즉, 임시방편적 가설을 추가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선택지에 호의적인 매우 다른 종류의 논변도 생각했다. 여섯 행성들의 궤도가 코페르니쿠스가 배열한 대로라면 그것은 다섯 가지 플라톤 식 입체를 보여준다는 것이고 케플러는 자신의 저서에서 그러한 신학적인 자신감을 드러냈다.

4. Apologia pro Tychone contra Ursum

케플러에게는 행성들의 순서에 대한 진정한 지식과 관찰 현상을 구제하는 단순히 기능적인 수단을 어떻게 구분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았다.

니콜라우스 우르소(Nicolaus Ursus)는 1588년에 브라헤의 지구중심적 견해와 매우 비슷한 체계를 제안했고 브라헤는 이를 악의적인 표절이라고 받아들였다. 브라헤는 케플러를 고용해서 우르소를 비난하고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를 출판하게 하려 했고 케플러는 마지못해 자료를 모았다. 그러는 동안 우르소와 브라헤가 모두 중간에 죽었다.

우르소의 주장은 자신이 행성 배열에 관한 진짜 설명을 했고, 이와 달리 (“모두가 알고 있는”) 수학적 천문학은 그러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르소는 두 가지 비판을 염두에 두었는데, 하나는 현상은 매우 다른 기하학적 도구들에 의해 구제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코페르니쿠스와 티코의 천문학의 가설은 참인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 왜냐하면 다른 가설들도 동등하게 그러하게 그러한 목적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케플러는 천문학자들은 행성들의 현상을 예측하고 추론하는 것만을 요구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은 없다는 것에 답해야 했다. 케플러의 답변은 “물리학적 고찰”(physical considerations)을 통하여 행성 체계가 실제로 어떻게 배열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르소는 “가설”을 틀린 가정으로 취급했으나 케플러는 천문학적 가설이 무엇을 사실이라고 상정하는 것이고 거짓인 것과 참인 것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모든 가설은 자신의 결과물을 산출할 것이고 다른 가설에게 그러한 결과물을 받지 않을 것이므로” 특정 시점에서는 동등하게 현상을 구제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설도 충분히 오랜 시간이 지나면 가설들 사이에 차이가 들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5. Astronomia Nova, 1608

행성 궤도를 타원 모양을 설정한 것은 매우 엄청난 계산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천문학에 새로운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전의 전통을 완전히 깨뜨렸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진보이다. 어떠한 기하학적 구성이 2차원 관찰 자료를 가장 잘 나타내는지에 대하여 케플러는 화성의 운동을 궁극적으로 물리학 용어로 설명했다.

케플러는 수학적 천문학과 물리학적 천문학 사이의 오래된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물리학과 수학은 다른 추상적 수준에 속한다고 보았는데, 케플러는 이제 수학이 물리학과 구분될 수 없으며 수학 없이는 물리학적 이해는 성취될 수 없다고 했다.

19세기 경험론자들은 귀납을 설명할 때 행성 궤도가 타원이라는 케플러의 발견을 기구를 이용한 관찰에 의해 직접적으로 얻은 자료를 근사화하여 발견한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티코 브라헤의 관측 자료는 타원 궤도를 지지할 만큼 충분히 정확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체계에서 행성 운동의 근원은 그 자체로는 움직이지 않는 제1의 동자인데 케플러는 빛과 따뜻함의 원천인 태양은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태양의 인과적 “덕”(virtue)은 왜 행성들이 자신의 궤도에서 태양과 멀고 가까움에 따라 가속되고 감속되는지를 설명했다. 그럴듯한 인과적 설명들에 대한 직관은 실제 궤도를 골라내기를 요구받는 복잡한 기하학적 결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6. A Celestial Physics

아리스토텔레스 식 체계에서 heaviness(중력)은 힘도 아니고 외부 행위자에 의존하는 어떠한 것도 아닌 내재적인 성향이다. 케플러는 행성 운동에 관한 힘과 관련된 대안적인 설명을 하려고 했다. 케플러는 자연 상태에서 행성들은 쉬는 상태이므로 운동이 시작되려면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이는 케플러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행성들의 궤도 운동을 하도록 태양이 어떻게 힘을 전달하는가? 케플러의 해결책은 태양이 스스로 회전한다고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이 행성들을 어떻게 상대적으로 일정한 거리로 유지하게 할 수 있는가, 또는 어떻게 그러한 영향을 계산할 수 있는가는 전혀 명확하지 않았다. 데카트르도 그러한 소용돌이를 선택했으나, 케플러의 회전은 비-물질적인 것이고 태양이 힘을 어떻게 힘을 전달하는가에 대한 것이고, 데카르트의 소용돌이는 물질적인 에테르이고 압력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케플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끌어들인 개념은 인력이다. 단순한 성향이 아니라 진짜 인력을 옹호한 것이다. 지구의 인력은 바닷물이 달로 오르지 않게 유지하고 달의 인력은 조수간만 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지구의 인력이 달에 미치는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지구의 인력이 어디까지 미치든 행성들이나 태양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문제가 남았다. 그래서 케플러는 가상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태양의 소용돌이는 행성들이 왜 태양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로 변하는지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태양과 행성들을 거대한 자석이라고 보고 극들의 태양과의 상대적인 거리가 바뀜으로써 인력과 척력을 바뀌기 때문에 행성과 태양과의 거리가 바뀐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서 행성들이 궤도를 돌 때 고정된 별들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행성들의 자축(magnetic axis)이 고정된 채로 있다고 가정한다면, 궤도는 타원일 것이고 이는 티코 브라헤의 관측 자료와도 부합한다고 했다.

7. Moving the Earth

케플러는 물리학에 전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나는 우연을 필연과 뒤섞고 그 혼합물에서 그럴듯한 결론을 도출한다. 천체 물리학을 천문학과 섞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에 놀라지 않는다. 이는 감각의 가장 확실한 증거 외에 다른 공리들을 사용하는 물리학, 의학, 다른 모든 과학의 본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개념을 따르면 당시에 따르면 이렇게 혼합하는 것은 과학으로서 산출물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지만, 케플러의 물리학적 천문학은 진보적인 작업이고 계속 개정될 작업이었다. 당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증명과 거리가 멀다는 비판에 케플러의 즉각적인 답변은 누군가 “감각들의 확실한 증거”를 넘어서면 그러한 이상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케플러의 새로운 물리학에서 참인 궤도를 찾기 위해 가능한 원인들을 가설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필요한 것은 감각들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궤도와 그것의 그럴듯한 원인들은 가정되는 것이다. 가설은 상상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케플러는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면서 증명(demonstration)이 아니라 그럴듯함(plausibility)이나 개연성(likelihood)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가설들은 어떻게 취급되어야 하는가? 케플러는 가설을 잠재적으로 인식적인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말한 것처럼 가설이 단순히 “현상을 구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설은 정확한 예측을 이성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데 충분할 정도로 관찰 가능한 현상을 기술해야 한다. 그러나 가설은 행성의 진짜 궤도를 드러내지 못하며 그러한 궤도를 어느 방식으로도 설명하지 못한다.

케플러는 물리학과 자연과학에서 가설이 어떻게 타당하게 되는가를 명확히 해야 했고 가설의 인식론적 지위를 평가하는 새롭고 간접적인 방식을 제시했다. 케플러의 응답은 행성들의 진짜 궤도를 찾을 때 인과적 가설을 요구되며 이러한 가설은 설명적 설득력을 제공한다거나 임시방편적인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기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즉, 틀린 가설은 환경과 맥락이 바뀌면서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배반한다는 것이다.

(20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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