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omas S. Kuhn (1996),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3rd e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 66-76.
토머스 S. 쿤, 「7장.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과학혁명의 구조』, 김명자・홍성욱 옮김 (까치, 2013), 148-163쪽. ]
■ [pp. 66-67, 148-149쪽]
6장에서 살펴본 발견은 패러다임 변화의 원인이거나 그러한 변화에 기여한 것.
7장은 새로운 이론의 창안에서 비롯되는 패러다임 변화를 다룸
사실과 이론, 발견과 발명은 범주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님.
정상과학은 이론보다 발견을 더 추구하는 활동인데, 새로운 이론이 어떻게 정상과학에서 탄생할 수 있는가?
■ 새로운 이론 출현의 선행조건으로서의 위기 [pp. 67-68, 149-50쪽]
변칙에 대한 인식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출발점이었다면, 새로운 이론이 출현하기 전에도 변칙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심오한 어떤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함.
쿤은 이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확실하다고 주장함
예(1): 코페르니쿠스,
예(2): 뉴턴의 빛과 색깔에 대한 이론
예(3): 19세기 두 물리 이론의 충돌에서 탄생한 열역학
예(4): 흑체 복사, 비열, 광전 효과를 둘러싼 난제들에서 탄생한 양자역학
변칙 현상을 인식한 것이 매우 오래 지속되어서 그 영향을 받은 분야들은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태
새로운 이론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패러다임 파괴와 정상과학의 문제 및 해법에 대한 중요한 변화가 필요함.
새로운 이론의 출현은 대체로 그 전문 분야의 불안정함이 현저해지는 선행 시기를 거침.
그러한 불안정함은 정상과학의 수수께끼들이 좀처럼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데서 발생함.
기존 규칙의 실패는 새로운 규칙에 대한 탐사의 전조가 됨.
■ 천문학 혁명 직전의 상황 [pp. 68-69, 150-53쪽]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은 매우 성공적이었음.
프톨레마이오스의 시도는 많은 경우 매우 정확했지만, 행성의 위치와 세차 운동 두 가지는 부정확했음.
프톨레마이오스의 후계자들은 그 사소한 불일치를 개선하는 일종의 정상과학 수행했고, 이 또한 매우 성공적.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천문학자의 일부는 천문학의 복잡성이 그 정확성보다 훨씬 빠르게 증대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한 곳에서 이루어진 보정이 다른 곳에서 모순을 일으키는 것을 깨닫게 됨
예) 알폰소 10세, 도메니코 다 노바라, 코페르니쿠스의 언급
이러한 위기 인식이 새로운 패러다임 탐색의 선행 조건.
달력 개혁에 대한 사회적 압력, 르네상스 시기의 신플라톤주의의 융성 등의 사회적 요소도 위기에 일조했지만, 위기의 핵심은 기술적인 붕괴(technical breakdown).
■ 화학 혁명 직전의 상황 [pp. 69-71, 153-55쪽]
1770년대 여러 요인이 복합되어 위기 발생. 원인에 대해 논란이 있으나 그 중 두 가지 요소는 분명함.
요소(1): 기체화학의 발전하면서 플로지스톤 이론의 모호성이 증가하고 효용성이 감소함.
화학자 중 누구도 플로지스톤 이론이 대체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지 않았지만 그 이론을 일관성 있게 적용할 수도 없었음.
수많은 플로지스톤 이론의 수정안이 등장함
하나의 이론에 대하여 수많은 수정안이 등장하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증상
■ [pp. 71-72, 155-57쪽]
요소(2): 연소시 무게 증가 문제
많은 경우 연소하면 무게가 감소하지만 어떤 금속은 연소하면 무게가 증가함.
이는 예전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고, 17세기 일부 연구자들은 연소된 금속이 대기 중의 어떤 성분을 흡수한다고 설명함.
그렇지만 17세기 대부분의 화학자들은 그러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음. 화학반응에서 수많은 성질이 변하는데 무게가 변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
18세기를 거치면서 연소시 무게 증가의 문제는 점차 중대한 문제로 인식됨
천칭 저울이 표준적인 화학 기구로 수용되고, 기체 화학의 발달로 기체 생성물을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연소에 따른 무게 증가 현상을 더 많이 관찰하게 됨. 또한, 뉴턴의 패러다임에 화학자들이 동화되어 무게 증가를 쉽게 무시할 수 없게 됨.
이러한 문제에 대한 여러 해법이 가능했기 때문에 화학자들은 플로지스톤 이론을 포기하지 않음.
예) 음의 무게를 가진 플로지스톤, 연소시 새로운 물질의 흡수 등
그렇지만 이 문제는 화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었고, 그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연구의 수가 증가함.
라부아지에의 1772년 논문으로, 무게 증가 문제는 두드러진 미해결 퍼즐로 부각됨. 수은재 가열 실험 전부터 플로지스톤은 무게 문제와 관련하여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라부아지에는 그러한 위기감을 인식한 사람 중 하나.
라부아지에가 이 문제를 건드릴 무렵, 플로지스톤 이론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정 변형되었으며 화학의 패러다임은 점차 그 독보적 지위를 점진적으로 상실해 감.
점차 이 분야는 패러다임 이전의 여러 학파들이 경쟁하던 시절의 연구와 흡사해짐. 패러다임 이전의 연구 양상과 유사해지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증상
■ 상대성 혁명 직전의 상황 [pp. 72-74, 157-160쪽]
위기의 근원(1): 17세기 말 자연철학자 다수는 절대 위치와 절대 운동이 뉴턴 체계에서 아무런 구실도 못함을 증명함.
이러한 지적은 순전히 논리적인 것이었고, 뉴턴 이론을 자연에 적용할 때 일어난 어떤 문제와도 관련되지 않음. 이러한 견해는 18세기 초 사라졌다가 19세기 말에 부활함.
위기의 근원(2): 에테르 검출 노력 실패
에테르 끌림을 가정한 여러 버전의 설명 등장. 아직까지는 심각한 모순 인식되지 않았음.
위기의 근원(3): 19세기 말 수용되기 시작한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은 뉴턴의 역학과 잘 들어맞지 않음.
둘을 조화시킬 수 있는 명료화를 발전시키는 작업은 계승자들에게 남겨짐. 그러나 그 작업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밝혀짐,
이는 패러다임의 위기를 조성했고, 그 초점은 에테르 문제에 집약됨.
이들의 연구는 각각 부분적으로만 성공적이었고,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이 난립함.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이 출현하던 시점의 배경.
■ 세 가지 사례의 특징 [pp. 74-76, 160-62쪽]
특징(1): 새로운 이론은 정상적 문제 풀이 활동에서 현저한 실패를 본 후에야 출현함.
특징(2): 붕괴가 일어났던 문제들은 모두 오랜 세월에 걸쳐 인식되어 온 문제. 위기로 이끈 문제는 처음에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나중에야 심각한 실패로 인식됨.
특징(3): 위기의 해법으로 등장하게 될 아이디어의 일부는 이미 존재했음. 다만 위기를 느끼지 못했던 상황에서 무시되었을 뿐
예(1): 기원전 3세기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 체계 제안
그리스 과학이 덜 연역적이고 덜 독단적이었다면 태양중심 천문학이 훨씬 일찍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말은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 것임.
아리스타르코스가 제안했을 때는 지구중심 체계가 태양중심 체계보다 압도적으로 합리적이었고, 태양중심 체계가 지구중심 체계를 보완할 만한 부분이 없었음.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승리와 몰락은 아리스타르코스의 주장이 있은 뒤 한참 뒤에 일어났음.
아리스타르코스보다 더 정교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도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보다 더 단순하거나 더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리스타르코스를 받아들일 뚜렷한 이유가 없었음.
예(2): 17세기에 레, 훅, 메이오 등은 연소가 대기에서 무엇인가를 흡수하여 일어난다는 이론을 제창함.
예(3): 18-19세기 과학자들은 뉴턴주의의 상대론적 비판을 장기간 무시함.
■ [p. 76, 162-163쪽]
대안을 처음 고안하는 일 생각보다 어렵지 않음. 그러나 대안을 고안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거의 수행하지 않는 작업이며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만 일어남.
하나의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도구들이 패러다임이 정의하는 문제들을 풀 수 있다고 증명되는 한, 과학은 최고의 속도로 활동하며 그들 도구들을 확신 있게 적용하여 가장 심도 있게 침투함.
도구를 바꾸는 것은 사치. 위기는 도구를 바꾸어야 할 때를 알려주는 지표.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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