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2

『미움 받을 용기』에 관한 호들갑

   

<동아일보> 기사 “우리는 왜, 일본 철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가”는 제목부터 낚시다. 기사 내용에 비해 제목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일본 교양서적, 한국 서점가에서 큰 인기” 정도가 적절한 제목이다.
  
그 기사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는 일본 철학계와 대중을 외면하는 한국 철학계를 대비하는 구도로 작성되었다. 기사에서 예로 드는 것은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 받을 용기』다. 그런데 그 책은 철학책이 아니다. 철학자와 청년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고 해서 철학책이면, 철학자가 청년에게 대화하면서 요리를 가르쳐주는 책도 철학책이다. 나는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미움 받을 용기』에 소개된 아들러 심리학은 대체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이야기다. 기자는 여느 일반인처럼 알쏭달쏭한 이야기나 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잘못 아는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일본 책이 잘 팔리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철학 전공자와 출판 전문가들은 △일본 지식 분야의 수준이 높은 점 △저성장 및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의 대안이 담긴 점 △국내 철학계의 엄숙주의가 겹쳐진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도대체 국내 철학계의 엄숙주의는 무엇인가.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즘 철학과 교수들, 모이기만 하면 ‘강신주’ 욕하느라 바빠요.”
  
한 철학 전공자의 말이다. 여기에는 스타 강연자가 된 철학자에 대한 시샘뿐 아니라 대중 저술과 강연 자체를 폄훼하는 학계의 시각이 담겨 있다. 국내 한 대학 철학과 교수는 “대중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 ‘가볍다’고 보는 엄숙주의 탓”이라고 했다. 출판계도 “저자를 발굴하려 해도 대중적으로 글을 쓰려는 철학 전공자가 없다”고 말했다.
  
천안함 인간 어뢰 기사 같은 거나 쓰는 기자가 “이것이 기자다, 50년 후에 내 기사만 남는다”라고 하면서 설치고 돌아다닌다고 하자. 기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그 기자를 욕할 것이다. 강신주는 기자로 치면 그 정도 되는 사람이다. 철학과 교수들이 강신주를 욕한다고 치자. 그게 엄숙주의와 무슨 상관인가. 오히려 철학과 교수가 강신주 욕하는 것을 욕하는 철학 전공자가 정상적인 전공자인지를 의심해야 할 것이다.
  
연구, 교육, 행정, 대중과의 소통 중에서 교수는 어느 일을 중점적으로 해야 하는가. 대중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연구, 교육, 행정보다 앞설 수는 없다. 연구와 교육은 교수의 본분이다. 행정 처리를 안 하면 학과가 안 돌아간다. 대중과의 소통은 석사학위 있는 사람도 할 수 있고, 박사학위는 있으나 교수 아닌 사람도 할 수 있다. 교수는 어느 일부터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가?
  
교수들이 게을러서 대중 강연을 안 하고 대중 서적을 안 쓰는 것도 아니다. 연구와 교육만으로도 중노동이다. 학회에서 발표한다고 연구실에 접이식 침대 사다놓고 주무시는 선생님도 있다. 내 지도교수님은 정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도 최신 논의를 살피느라 바쁘다. 연구하는 선생님들에게 행정 인력과 강의 보조 인력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지원이 마땅치 않다는 것은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교수들이 게으르고 오만해서 강신주 같은 사람이 잘 되는 거나 시샘한다고 매도할 뿐이다.
    
기자는 철학자들의 엄숙주의를 문제 삼지만, 국내 철학자들이 계속 교양서를 출판했고 독자들이 계속 외면했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는다. 강원대 최훈 교수 같은 분들이 쓰는 교양서적은 내용이 괜찮을 뿐 아니라 독자들이 흥미를 끌만한 요소도 중간 중간에 많이 수록했다. 그러나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출판된 기초 논리학을 다룬 교양서적만 몇 십종이지만, 그 중 잘 팔린 것은 위기철의 논리 3부작(『반갑다 논리야』, 『논리야 놀자』, 『고맙다 논리야』)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150만부 이상 팔렸을 때 언론에서는 한국인들이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서 그 책을 많이 샀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그 책을 산 사람 중 국내 철학자가 쓴 윤리학 교양서를 구입한 사람이 20분의 1도 안 된다는 것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기자는 일본 책이 잘 팔린다는 사실은 말하지만, 정작 좋은 책은 번역해봐야 안 팔린다는 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오가미 마사시가 지은 『수학으로 풀어보는 물리의 법칙』이란 책은 고등학교 이과 수학을 소화한 사람을 대상으로 뉴턴 역학,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을 설명하는 책이다. 여느 교양서처럼 대충 설명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물리공식을 하나씩 증명하며 설명한다. 이 책은 한국에서 당연히 잘 안 팔렸고, 지금은 절판되어서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다. 얼마나 안 팔렸는지 중고서점에도 상품이 없다. 미우라 도시히코의 『가능세계의 철학』은 가능세계 입문서다. 저자는 철학 이외의 여러 학문에서 가능세계 개념을 사용하는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그러든 말든 이 책도 당연히 많이 팔리지 않았다.
    
『미움 받을 용기』의 인기는 기존의 힐링 서적의 인기의 연장선에서 파악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인데, 해당 기사의 작성자는 번역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책을 가지고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모르겠다. 부실한 내용을 자극적인 제목으로 덮지 말고, 대학의 미비한 지원, 출판 시장의 실태 등을 기사에서 다각도로 분석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 링크: [동아일보] 우리는 왜, 일본 철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가
  
  
(201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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