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애들은 놀랍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똑똑한 반면, 멍청한 애들은 비슷비슷하게 멍청하다. 그래서 멍청한 애들은 하는 짓이 빤하다. 그러한 빤한 행동 중 하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용어를 희한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봐야 소용없다. 어차피 그 말을 쓰는 당사자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학부 때 OT 가기 전에 반-성폭력 교양 같은 것을 하려고 하면 “우리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거냐?”면서 반발하는 놈들이 꼭 있었다. 반-성폭력 교양이 내용이라는 것도 사실 별 게 없는데 어떤 내용이 그들의 성미를 건드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하여간, ‘잠재적 가해자’ 같은 소리는 어디서 주워들은 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뉴스에 나오는 용어를 주워듣고 그랬던 것 같다.
경찰이 길거리에 CCTV를 설치하려고 한다든지 하면 인권단체에서는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거냐?”면서 반발한다. 지문날인을 반대한다든지 할 때도 똑같은 말을 한다. 나는 아직도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잠재적 범죄자”라는 말을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사람”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국가가 개인 정보를 모아서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잠재적 범죄자” 같은 소리는 그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공사장에서 공사할 때 안전교육을 하고 안전장비를 장착하게 하는 건 해당 노동자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걸 두고 “나를 잠재적 사망자로 보는 거냐?”고 반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미친놈이다. 치과에서는 환자한테 올바른 칫솔질을 알려주고 치실 사용을 권장한다. 이를 두고 “나를 잠재적 충치 환자로 보는 거냐?”고 반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미친놈이다. 성폭력을 성폭력인지 몰라서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 반-성폭력 교양을 한다. 이걸 두고 “나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거냐?”고 반발한다면 그 놈도 미친놈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호신술도 가르칠 수 없다. “나를 잠재적 범죄 피해자로 보는 거냐?”로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들은 희한한 말은 “내정간섭”이다. 서울여대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본부와 싸우느라 현수막과 대자보를 붙였고,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그것들이 미관을 해친다면서 일방적으로 철거해서 농성 천막에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그러자 다른 학교 사람들이 서울여대 총학생회를 욕하기 시작했고, 이에 서울여대 총학생회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거 내정간섭이다!”라면서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런 걸 어디서 주워들었을까 생각해보니, 이것도 역시나 출처가 뉴스다.
UN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을 내면 북한은 “이거 내정간섭이다!”라면서 반발한다. 미국 등 서방 세계에서 중국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면 중국은 매번 “이거 내정간섭이다!”라면서 반발한다. 욕먹을 짓 해놓고 욕먹기 싫으니 욕하지 말라고 하는 것, 이게 그들이 말하는 내정간섭이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여타 그럴듯한 나라들이 욕 먹을 짓 해놓고 내정간섭이라고 지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따라 하려면 그럴듯해 보이는 나라를 따라 해야 할 일이지만, 멍청한 애들에게는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구분할 눈이 애초부터 없기 때문에 내정간섭 같은 소리나 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쓰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무엇이 그럴듯해 보이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서울여대 총학생회를 욕하지 않기로 했다.
(201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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