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27

문학을 망치는 당신들의 시선?

     

빌 게이츠는 “법인세가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지 않는다. 법인세 때문에 모든 혁신가들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직썰>에 실린 “문학을 망치는 당신들의 시선”이라는 글에서 글쓴이는 독자들의 “무식하고 저급한 비난이 창의적인 문학을 저해한다”고 말한다. 기업가는 국가에서 세금을 걷어가도 혁신을 멈추지 않는데 예술가는 정치적 탄압도 아니고 그깟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예술 활동에 지장을 받는다는 말이다.

인류 역사상 지금만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적이 없다. 반대로 말하면 지난 시대에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았다. 그런데도 고대부터 예술가들은 혁신에 혁신을 거듭했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아서 과거의 예술가만큼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독립군도 일본군이 무서워서 독립운동을 못 하지 않았는데, 예술가가 사람들 시선이 무서워 예술을 못 한다는 것인가?

글에서 글쓴이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은 사례로 사드, 마광수, 귀여니를 든다. 귀여니? 『그놈은 멋있었다』의 그 귀여니? 그 귀여니 맞다. 사드나 마광수는 그렇다고 쳐도, 귀여니가 그와 같은 선상에 오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귀여니 책을 읽어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해서 귀여니 소설의 작품성을 논할 입장이 아니다. 다만, 귀여니 소설이 흔하고 뻔한 이야기에 이모티콘을 넣은 것에 불과하다는 게 귀여니 소설을 읽어본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라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도대체 귀여니가 어떤 탄압을 받았는가?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비난의 양상은 정확히 문희준의 그것과 똑같았다. 평소 소설은커녕 책이라면 질색을 하는 이들까지 귀여니 비난에 가세하고 나섰다. 그들은 논리는 한결같았다.

‘귀여니의 소설은 문학이라기엔 수준 미달이다.’

정작 문학이란 무엇인지 의문 한 번 품어보지 않았지만, 이들의 논리는 견고했고 목소리는 강력했다. 당시 이 결론에 반박을 했다가 지인에게 들은 핀잔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이런 쓰레기들 때문에 독자들 수준이 떨어지는 거잖냐. 그렇게 되면 똑같이 수준 낮은 작품들만 인기 끌고 말겠지. 누가 소설을 공 들여 쓰겠냐.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문학이 망하는 거야.”

그러니까 귀여니가 받은 비난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소설이 수준 미달이라고 욕을 먹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매장된 것도 아니고 감옥에 간 것도 아니다. 소설을 못 쓰면 욕을 먹을 수도 있는 것이지 그게 그렇게 대단한 탄압인가? 소설 못 썼다고 욕 좀 먹는 것이 사드와 마광수가 받은 탄압에 비견될 일인가?

그렇다면 귀여니가 시대를 앞선 대단한 선구자라서 욕을 먹은 것인가? 그렇다면 귀여니 소설의 작품성에 대한 재평가라도 있을 법한데 아직까지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분간은 아니더라도 먼 미래에 그러한 재평가가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글쓴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놈은 멋있었다』가 작품으로 인정받는 순간 대한민국 문학계는 끝도 없이 추락할 거라고 그들은 확신했다. 스토리 구성, 인물 간의 갈등 관계, 사건의 개연성,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 등 높은 소설 장벽을 무시하고도 스토리만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증명은 애써 무시한 채 『그놈은 멋있었다』를 저급한 작품으로, 문학을 망치는 수준 떨어지는 작품으로 재단질해 냈다. 그렇게 인터넷 조회수 800만, 단행본 판매부수 50만 권을 기록한 이 작품은 쓰레기로 매도됐다. 콘텐츠만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올 거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글쓴이도 귀여니 책이 “스토리 구성, 인물 간의 갈등 관계, 사건의 개연성,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 등 높은 소설 장벽을 무시하고도 스토리만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건 귀여니 소설이 소설로써 최소한의 것조차 무시했다는 말이다. 인물 간의 갈등 관계나 사건의 개연성은 소설의 덕목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이러면 소설 못 썼다고 욕먹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글쓴이의 말대로 『그놈은 멋있었다』는 인터넷 조회수 800만, 단행본 판매부수 50만 권을 기록했다. 이건 귀여니 소설이 비판받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디워>는 한국에서 700만 명 이상이 관람했지만 작품성은 그것과 별개였다.

글쓴이는 전문가들이 “콘텐츠만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의견을 냈지만 그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개탄한다. 그건 전문가가 전망을 잘못한 것이지 사람들을 탓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정말 전문가인지를 받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그런데 소설로서 기본도 안 되든 말든 콘텐츠만으로 승부를 본다고 생각한 것부터 이미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 아닌가?

글쓴이는 귀여니의 활동이 뜸한 것이 그리도 안타까운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귀여니는 『그놈은 멋있었다』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는다. 몇몇 작품이 눈길을 끌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안타까운 건, 지금까지도 이런 류의 스토리가 문학이 아닌 저급한 콘텐츠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미스터리 문학이 이에 포함돼 있었다. 지금에서야 히가시노 게이고 등 유명한 일본 작가들 덕에 조명 받고 있는 듯하지만, 이미 늦었다. 미스터리 분야 한국 작가는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귀여니의 승승장구에 꿈을 포기한 순수문학 작가지망생들보다 귀여니가 받은 맹비난을 목도하고 장르문학을 포기한 이들이 아쉽고 또 문학계의 큰 손실로 느껴지는 이유다.

글쓴이는 귀여니가 욕 좀 먹었다고 소설가로서 성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럴 가능성이 열려 있기는 한데, 애초에 “스토리 구성, 인물 간의 갈등 관계, 사건의 개연성,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 등 높은 소설 장벽을 무시하고도 스토리만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았다”다면 그야말로 글을 쓸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으니 기초부터 단계를 밟았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귀여니가 내리막길로 걸은 것은 욕 먹어서가 아니라 그냥 글을 못 쓴 사람이 글이 안 늘어서 아닌가? 원래 글솜씨는 잘 안 는다. 칭찬 좀 받는다고 글솜씨가 막 느나?

글쓴이는 “귀여니가 받은 맹비난을 목도하고 장르문학을 포기한 이들이 아쉽고 또 문학계의 큰 손실로 느껴진다”고 한다. 예전에 어떤 출판기획자는 “문학계 파이가 한정되어 있는데 문학에 대한 환상을 품고서 문장 하나 제대로 쓸 줄 모르는 함량미달의 사람들이 소설가가 되겠다며 모이는 것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귀여니가 욕먹는 것을 보고 문학을 포기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들이 발길을 돌린 것은 문학계에 별다른 손실이 아닐 것이다.

마네 그림이 처음 소개될 때 미술관은 그가 그린 그림을 다른 그림보다 몇 미터 위에 걸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을 보고 화가 난 사람들이 우산으로 작품을 훼손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네는 그림을 계속 그렸다. 고흐는 죽을 때까지 가난에 시달렸지만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허난설헌은 여자의 몸으로 조선의 태어난 것을 원망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시를 지었다. 그런데 글쓴이는 귀여니를 예로 들며 창의적인 문학을 저해할 수 있으니 함부로 욕하지 말란다.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고 독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나도 『솔로 강아지』를 전량 회수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른보다 어린 아이가 더 잔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그 아이가 썼다는 시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이것과 별개로, 나는 이번 일이 그 아이의 예술적 감수성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시 쓰기를 멈출 아이라면 그러한 시선이 없어도 시를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링크: [직썰] 문학을 망치는 당신들의 시선 / 임영민

( www.ziksir.com/ziksir/view/1909 )

(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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