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 독일인 대학원생이 있다. 한국 문화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한국어로 의사소통하기에 불편함이 없어서 한국이나 동아시아 이야기를 간혹 한다.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 나: “<삼국지연의> 읽어 보셨어요?”
- 대학원생: “아니, 안 읽어봤어.”
- 나: “<삼국지연의>를 보면 관우라고 굉장히 대단한 장군이 나와요. 그 사람이 전투를 하다가 독화살을 맞았는데 독이 뼛속까지 스며든 거예요. 그래서 수술을 받아야 했어요. 의사가 상처를 보더니 살을 째고 뼛속을 긁어내야 한다는 거예요. 당시는 마취약이 없으니까 수술을 하면 아파서 몸부림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의사는 땅에 기둥을 박고 관우의 손발을 다 묶어야 한다고 했어요. 묶어 놓고 수술을 하겠다 그건데, 관우는 그럴 필요 없다고 하면서 자기는 바둑을 둘 테니까 알아서 수술해라 그런 거예요. 그러고 나서 (팔을 내미는 시늉을 하며) 그냥 바둑 둔 거예요, 의사가 수술하는 동안.”
- 대학원생: “(웃으며) 아, 말도 안 돼.”
- 나: “소설에는 그렇게 나오는데 그건 민간설화에서 나온 거고, 역사책에는 다르게 나와요. 전투하다가 부상 입고 치료를 받았는데 부하들이 걱정할까봐 밤에 술자리를 베풀고 고기를 잘라줬다고 나와요. 그러니까 자상한 사람이라는 거죠.”
- 대학원생: “아, 그래?”
- 나: “네, 어쨌든 소설에 나오는 의사 입장에서 보면 관우가 얼마나 대단해 보이겠어요. 뼈를 빡빡 긁고 피가 철철 나오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가만히 바둑을 두잖아요. 그래서 그 모습에 감탄해서 이렇게 말했대요. ‘어, 이쪽 팔이 아니네?’”
(201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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