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4

교회를 옮기기로 하다



지난주 일요일, 한 달 보름 만에 교회에 갔다. 교회에 갈 마음이 안 나서 한동안 가지 않았다가 오랜만에 갔다.

6월 29일(일)에 오전 예배를 보고 교회를 나오는데, 사모님이 다음 주에 교회에 청소하러 나올 수 있느냐고 했다. 그 전에도 사모님은 나를 교회로 부르려는지, 내가 일주일에 몇 번 학교에 가는지, 평일에는 집에 있는지 등을 물어보곤 했다. 나는 목요일에 학회에 발표하러 가야 하니 수요일에 가능하다고 답했고, 그렇게 7월 3일 오전에 교회에 가서 청소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와 사모님은 둘 다 날짜와 요일을 착각했다. 7월 2일이 수요일이고 7월 3일이 목요일인데, 나는 7월 3일을 수요일로 잘못 알고 있었다. 학회 전날인 7월 2일(수) 오전에 사모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이 교회 청소이니 오전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에, 나는 내일은 학회 발표라 교회에 갈 수 없다고 답했다.

6월 30일(월)에는 경찰로부터 내가 옆집 것들에게 고소당했다는 내용의 소환 통지서를 받았고, 7월 1일(화)에는 담당 수사관과 조사 일정을 잡았다. 7월 2일(수) 오후에 변호사님과 연락한 뒤 서울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활빈당 당원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7월 3일(목) 오전에 학회장에 갔다. 발표 10분 전에 변호사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학회 발표 끝난 뒤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고 끊고, 발표를 마치고 나서 다시 변호사님께 연락하여 사정을 대강 설명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변호사님한테 보낼 자료를 정리했다. 무고죄 관련 자료, 스토킹처벌법 관련 자료, 농지 무단점유 관련 자료를 각각 정리한 뒤 어떤 자료가 무슨 내용인지 일일이 설명하는 글을 작성했다.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6월 29일(일)에는 사모님으로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겠지만(사모님은 기도하다 가끔 하나님 음성을 듣는다던데 왜 이런 것은 안 가르쳐주시나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 속없이 교회 청소하러 나오라고 하니 짜증 났다. 교회 건물이 큰 것도 아니고, 청소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니다. 몇 주에 한 번 할까 말까다. 목사님이든 사모님이든 혼자 청소하는 법은 없고, 꼭 신도가 있어야만 청소하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도 삽 하나로 허리 깊이만큼 땅을 파고 사람 키보다 큰 나무를 옮기고, 어머니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도 혼자서 살림도 다 하고 고추 농사도 짓는다. 도대체 왜 코딱지만 한 작은 교회에서 꼭 사람을 불러야만 청소하는 것인가?

사모님은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일종의 용인술 같은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사모님이 초등학교 교장일 때 학부모한테 교회 봉사 같은 것을 시키려다가 문제가 생길까봐 못 했다는 이야기를 사모님 본인에게서 들었다. 언젠가는 교사들을 교회로 데려와서 예배보게 했는데, 알고 보니 무신론자, 천주교인, 원불교 신자 등을 교회에 데려온 것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교회에서 교사들을 보지 못했는데, 교육청에 민원이 들어가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최 권사를 통해 들었다.

예전에도 청소하자고 사모님이 불러서 교회에 갔더니, 청소 마친 뒤 커피 마실 때 사모님은 귀신 뒷다리 붙잡는 소리를 했다. 기도할 때 자기 손을 누군가의 등에 대면 그 사람의 믿음이 어떤지가 보인다는 것이다. 임 집사님 등에 손을 대면 물이 콸콸 솟는 것이 보이고, 내 등에 손을 대면 물이 흐르기는 흐르는데 땅속 깊이 암반층을 지나 깊은 곳에 졸졸졸 조그만하게 흐른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했다. 예수님도 남을 정죄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모님에게 무슨 권능이 있길래 물 같은 소리나 하면서 남의 신앙을 평가하는가? 그렇지만 사모님한테 차마 그런 건 반-기독교적인 것이라고는 말 못하고, “그러면 물이 맑겠네요?”라고 했다.

그전에도 사모님은 무슨 환영이 보이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를 간혹 했다. 언젠가는 나에게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느냐고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멀쩡히 교회 잘 다니는 성도에게 교회 사모가 그런 것을 묻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힌 소리라 나는 사모님에게 물었다. 교회에 신도가 많은 것도 아니고 만날 아가씨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할머니 몇 분 있는 교회에 다니는 이유가 신앙심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겠느냐고 말이다.

물론, 사모님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천성이 있는 데다, 가뜩이나 성도도 적은 교회를 인수했는데 부흥하기는커녕 열 명 남짓한 성도가 줄고 줄어 세 명만 남았으니, 남에게 뽐내기 좋아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 명 중 한 명은 새로 들어온 분이니 원래 신도는 나와 친척 할머니, 이렇게 둘만 남은 것이다. 그 세 명 중 십일조를 내는 사람은 임 집사님뿐이고, 나는 주정 헌금으로 5천 원을 내고, 친척 할머니는 2천 원을 낸다. 하나님이 목사님을 크게 쓰실 거라고 사모님에게 말씀하셨다던데(목사님 등 뒤로 칼날이 보이는 환영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교회가 그 모양이라면, 구순을 바라보는 노인네를 닦달하겠는가? 그래도 비교적 젊은 나를 닦달하고 싶겠지. 그런데 그렇다고 친척 할머니를 닦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7월 9일(수)에 경찰서에 갔더니 당일에 고소장을 열람할 수 없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7월 10일(목)에 고소장의 일부 내용을 받았다. 변호사님에게 보낼 자료를 정리하고 해설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7월 15일(화)에는 옆집이 점유한 토지를 현황 측량했다. 자료를 정리하고 해설하는 글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서 육체노동도 했다. 변호사 의견서 작성이 끝나고 나서 경찰하고 일정을 맞추다 보니 8월 1일(금)에 조사를 받게 되었다. 가끔 기도도 했지만, 교회에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8월 10일(일) 오후에 임 집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왜 안 나오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 혼자 나오려니 영 그렇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집에 일이 있어서 못 나갔다, 다음 주에 나가겠다고 답했다. 임 집사님 혼자 교회에 나오려니 쓸쓸하시겠다 싶었고, 나도 교회 나간 지 오래되었으니 그 다음 주에는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동안에도 목사님께는 매번 일이 있어서 예배에 못 간다, 다음 주에 뵙겠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는 보냈다.

8월 17일(일)에 아침에 교회에 가려고 준비했다. 마침 고추 건조기 수리기사가 교회 갈 시간에 집에 왔다. 집에 있는 고추 건조기가 고장 나서 어머니가 수리 신청을 했는데 수리기사가 일요일 아침 9시 30분쯤 온 것이다. 목사님께 연락해서 집에 일이 있어 예배에 늦을 것 같으니 저희 집에 오지 마시라고 연락했다. 일을 다 마치고 교회에 갔다. 오전 11시가 약간 지나서 예배당에 들어갔다.

문 여닫는 소리가 나면 예배당 맨 뒷자리에 앉는 사모님이 고개를 돌릴 만도 한데 쳐다보지도 않았다. 슬쩍 얼굴을 보니 평소와 달리 맨얼굴이었고, 화가 났는지 퉁퉁 부어있었다. 얼마 후에 예배가 끝났다. 나 포함하여 네 명뿐인 예배당에서 활짝 웃으며 반기는 것은 임 집사님뿐이었다. 사모님은 소리를 지르며 역정을 냈다.

“아무리 목사님이 연락을 하지 않아도 그렇지 그런다고 교회를 안 와? 그럴 거면 뭐 하러 와?”

그럴 줄 알았다. 그러고도 남을 사모님이었다. 그 와중에도 임 집사님은 나에게 “아유, 사모님이 서운해서 저러시는 거예요. 앞으로 자주 나오세요”라고 말했다.

내가 임 집사님에게 말했다. “제가 7월 초에 옆집 것들에게 고소를 당했습니다. 두 건 당했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 집사님은 “아이고!”라고 하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놀라지도 않았다. 내가 고소당했다고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조금도 놀라지 않은 사람이 딱 두 명인데, 그게 목사님과 사모님이다. 예배당에 나 이외의 기독교인은 임 집사님뿐이었다.

교회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목사님이 차분한 목소리로 “그런 식으로 교회를 나오려면 나오지 마세요”라고 했다. 나한테는 언제 그 말을 하나 싶었는데 그날 했다.

예전에 친척 할머니가 주말에 자식들이 와서 농사일을 돕는데 혼자 교회에 갈 수 없다며 교회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때 목사님이 친척 할머니한테 “그럴 거면 나오지 마세요! 그게 뭡니까? 딸도 교회에 다닌다면서요? 도대체 어머니가 교회에 가는 걸 방해하는 겁니까?”라며 역정 낸 적이 있었다. 내가 목사라면 그 할머니 집에 가서 농사일 돕는 척이라도 몇 번 해놓고 교회 잘 나오라고 말하겠다. 목회일 말고 따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목사님이 그렇게 말하니, 속으로 ‘나보고 교회 나오지 말라고 하면 곧바로 다른 교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예배를 몇 주 빼먹어도, 목사님은 나보고 “그럴 거면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다른 교회에 못 갈 것 같으니 엄포를 놓고 나는 정말로 다른 교회를 갈 것 같으니 그런 말을 안 하는 것 같았다. 그랬는데 이번에 목사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가 나온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놈이 망나니라 물려받을 재산을 앞당겨서 받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재산을 다 없앤 뒤 돼지 치는 일을 하러 가서 돼지가 먹는 열매로 배를 채우다가 간신히 아버지에게 돌아온다. 둘째 놈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버지는 둘째 놈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인다. 밭에서 일하던 맏아들이 집에 돌아오다 풍악 소리가 들려서 자초지종을 살피니 삐쳐서 집에 안 들어간다. 시키는 대로 일하는 자기한테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안 잡아주었는데, 망나니 둘째 놈이 왔다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주었다고 하니 삐칠 만도 하다. 그때 아버지가 나와서 맏아들에게 들어가기를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와 함께 하니 내 것은 다 네 것인데, 네 동생은 죽었다 살았으니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그런데 심지어 나는 탕자도 아니다. 내가 믿음을 버렸다고 했나, 교회에 안 나간다고 했나, 주말에 절이라도 다녔나? 매주 꼬박꼬박 일이 있어서 교회에 못 나간다고 연락도 했다. 탕자가 아닌 사람한테도 이러는데 진짜 탕자한테는 어떻게 하겠는가?

잠시 후에 목사님은 깜짝 놀랄 이야기를 했다. 친척 할머니가 치매로 고생하는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것을 두고 “도대체 자식들은 왜 자기 아버지를 방치하느냐? 왜 자기 어머니가 교회에 나간다는 것을 방해하느냐? 요양원에 모실 돈이 그렇게 아깝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말에 나는 그 집이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요양원에 보내고 싶지 않으니 그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목사님은, “그 집 땅 500평만 팔면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실 사람을 살 수 있는데, 왜 그걸 안 팔고 교회에 안 나오느냐?”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낮에는 낮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를 괴롭히고 밤이면 밤마다 자기 집을 가야 한다며 할머니가 제대로 잘 수도 없게 만든다. 친척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그 할머니는 할아버지 때문에 못 살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 할머니네 집에 돈이 없어서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안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 할머니한테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 이렇게 자식이 둘인데, 몇 달 전인가 손녀(아들의 딸)가 전세집을 구하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하자 딸 몰래 몇천만 원을 아들에게 준 적이 있다. 그 할머니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 고생을 하며 같이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인간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목사님은 땅 500평만 팔면 교회에 나올 수 있는데 왜 그 땅을 팔지 않느냐고 역정을 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목사님이 단순히 교회에 미쳐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그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예전에 최 권사님이 시동생을 교회에 데려온 적이 있었다. 원래는 도배일을 하던 분이었는데, 추락 사고를 당해서 죽을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났다고 한다. 사고 때문에 인지 능력이 7세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들었다. 최 권사님의 시동생은 교회에 늦게 다니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시동생이 예배 중에 펑펑 울기도 했다. 최 권사님이 목사님 부부와 사이가 틀어져서 교회를 옮겼을 때도 시동생은 같은 교회를 계속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시동생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는데, 그 사정을 건너 건너로 들은 바가 있다.

최 권사님의 시동생은 회복한 이후 다시 도배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시골은 대중교통이 불편한 데다 도배 장비를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으니 승용차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 상황인데도 목사님 부부는 시동생이 일 나갈 때 차를 태워줄 테니 승용차를 중고로 팔라고 꼬셨다. 시동생이 차를 중고로 팔았더니, 목사님 부부가 감사한 일 아니냐면서 차 판 돈을 교회에 헌금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 권사님의 시동생의 형편이 어려우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나와서 후원받는 광고에 출연하자고 꼬셨다고 한다. 그런 광고에 나오면 곧바로 5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목사님 부부는 그렇게 해서 돈을 받으면 교회에 헌금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정을 알게 된 최 권사는 곧바로 시동생을 자기가 다니던 교회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목사님 부부한테 가서 따지려다가 말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가 그 시동생의 조카였으면 민・형사상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최대한 알아보았을 것이고, 법적으로 뾰족한 수가 없더라도, 언론이든 교단이든 모든 수단을 이용해서 응징했을 것이다. 사고를 당해 인지 능력이 떨어진 사람을 착취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니다.

친척 할머니는 연로하지만 아직 총기를 잃지 않았으니 목사님 말을 들었다고 해도 땅 500평을 팔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항상 정신이 맑다는 보장이 없고, 누구나 일시적으로 정신이 흔들릴 때가 있는 법이다. 자식 몰래 땅 500평을 판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 권사님의 시동생에게 했던 것처럼, 땅을 팔아 돈이 생겼으니 교회에 헌금하라고 했을 것이다.

나는 목사님에게서 땅 500평 운운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길로 친척 할머니 댁에 가서, 목사님이 할머니네 재산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내 말을 듣자마자 “나를 그렇게 생각했구만”이라고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그 전부터도 목사님 부부는 할머니 댁에 가끔씩 와서 이것저것 얻어갔다. 반찬 달라, 채소 달라, 김치 달라 하는 것은 예사였다. 예전에 텃밭에 작물을 키워보겠다며 퇴비를 얻어갔다. 빈말이더라도 “퇴비 한 포대에 얼마냐?”고 묻을 법도 한데, 다짜고짜 퇴비 한 포대 달라고 했다고 한다. 봄에는 꽃잔디도 얻어갔다고 한다. 나는 할머니가 뜯어주는 만큼 꽃잔디를 얻어갔는데, 목사님 부부는 허락도 없이 삽을 들더니 제멋대로 꽃잔디를 떠버려서 한동안 꽃잔디 심은 곳에 땜통처럼 빈 곳이 있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그 집 땅까지 노린 것이다.

내가 교회에 여러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교회로 옮기지 않은 것은, 굳이 내 손으로 교회를 문 닫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처음에 이 교회를 다니기로 했을 때는 교인이 10여 명 정도였는데, 교회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현재의 담임 목사님이 교회를 인수했고, 현 목사님과 사모님이 교인들과 갈등하고 마찰을 겪으면서 교인 수가 계속 줄어들었다. 나는 목사님 부부가 잘못해서 교인들이 나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게 교인 수가 줄어드는 데 나까지 나가면 교회가 유지되지 못할 것이어서, 교회에 여러 문제가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교회를 옮기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주 일요일에 결심이 섰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의 뜻대로 될 것이다. 내가 교회의 운명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와 친척 할머니는 교회를 옮기기로 했다. 교회를 옮기기로 했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어제(토) 밤에 목사님께 보냈다.

* 뱀발(1)

최 권사님이 교회를 옮긴 것도 온갖 치사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최 권사님은 오래전에 남편을 잃어서 혼자 사신다.

어느 날 밤부터 집 앞에 못 보던 차가 세워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목사님 부부가 와서 최 권사님을 염탐한 것이었다. 사모님이 최 권사님에게 “애인 있으면 교회에 데려오라”는 말을 했다는데, 최 권사님 옆집에 누군가가 주차한 차를 최 권사의 애인이 주차한 차로 오인한 것이었다.

사모님은 외부에서 손님을 데려오면 꼭 최 권사님을 불러서 일을 시켰다고 한다. 언제는 최 권사님이 가져왔던 시래기가 맛이 있어서 가져오라고 했는데, 없어서 가져올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없는 것을 어떻게 가져오겠는가? 그런데 사모님은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오지 무슨 말이 많으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목사님 대신 사모님이 설교했을 때 자신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젊은 남자 교사들한테 무슨 지시를 하면 군소리 없이 “네, 알겠습니다!” 하고 일한다며, 성도들도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도 얼마나 징했겠나 싶다.

언젠가 목사님 생일 때는 최 권사님보고 20만 원을 주면서 아침에 목사님 생일상을 차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최 권사님은 당연히 화를 냈고, 목사님이 최 권사님 집에 와서 “사모한테 좀 져주면 안 되냐”고 말했다고 한다.

* 뱀발(2)

몇 년 전 오전 예배가 끝난 후 집에 갔다가 오후에 교회에 나와서 청소를 하기로 했던 적이 있다. 예전 목사님 계실 때는, 교회에서 집사님들이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청소하거나, 점심식사를 먹고 나서 다 같이 청소를 했는데, 현 목사님이 부임한 이후 신도들이 계속 줄다가 결정적으로 최 권사가 교회를 옮기고 코로나19까지 터지자 더 이상 교회에서 점심식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점심을 굶고 청소를 할 수도 없고 점심을 먹이고 청소를 시킬 수도 없으니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교회에 나와 청소를 하라는 것이었다.

오후 3시에 다시 교회로 가기로 하고 집에 왔는데 친척 할머니 댁에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교회에 간 사이에 집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그 때가 한여름이라 할아버지를 못 찾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19에 신고한 뒤 친척 할머니 댁에 가서 할아버지를 찾았다. 한참 찾았는데도 못 찾아서 사모님한테 전화를 걸어 교회 청소할 상황이 아니라고 말했다. 치매 노인이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도 사모님은 놀라지 않았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지 “그러면 할아버지 찾으면 청소하러 오라”고 말했다.

* 뱀발(3)

내가 목사님께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김◯◯입니다.

교회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지금 다니는 교회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다른 교회를 가는 것이 믿음을 버리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신학 전공도 아니고 기독교에 대해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제 상식으로는 ◯◯교회가 예수님 말씀에 부합하는 교회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른 교회로 가기로 했습니다.

사모님은 성도 등에 손을 대면 환영이 보이고 물이 신앙심을 나타낸다고 하며 성도들의 신앙심이 어떻다고 말씀하십니다. 제 상식으로는 그러한 행위는 반-기독교적인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남을 정죄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모님께 어떤 권능이 있어서 남의 신앙을 평가하는지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예전에 목사님이 코로나19 때문에 사모님이 대신 설교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모님은 베드로가 신학대학을 나왔느냐면서 본인이 웬만한 목사들보다 잘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성서를 잘 모르지만, 에베소서든 로마서든 고린도전서든 믿음을 자랑하지 말라고 써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씀을 할 수 있는지도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지난주에 목사님은 정◯◯ 집사님이 500평만 팔면 되는데 왜 그렇게 지내느냐고 말씀하셨는데, 이 또한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집은 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몇 달 전 그 집에서 손녀 전세금으로 몇천만원 보낸 것도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정◯◯ 집사님은 치매로 고생하는 남편과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수시로 기도하는 것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이 교회에 못 나온다고 땅 500평을 팔라고 한다는 것은, 제 상식으로는 기독교인이 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목사님이 ◯◯교회에 부임한 뒤 ◯◯교회에 어떠어떠한 일을 할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보았으나, 목사님이 이웃이나 성도를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기도를 한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땅 500평을 팔라는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합니까?

◯◯송 집사의 승용차를 판매한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건너 건너로 들은 바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 비난이나 기독교인으로서의 자세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송 집사의 조카였으면 법적으로는 민형사상으로 합의 없이 끝까지 갔고, 그 외에 언론이든 뭐든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했을 겁니다.

제가 지난주에 교회에서 보니, 목사님이나 사모님이나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머리로만 알지 그것을 실천하는 분은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교회로 가지만, 앞으로도 믿음을 지키며 살겠습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02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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