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5

김준혁 교수의 특이한 점



김준혁 교수가 국회의원 예비후보 등록한 것을 보고 ‘어차피 공천 못 받을 텐데 어지간히 국회의원 하고 싶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공천받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었다. 김준혁 교수가 아무하고 아무 말이나 하며 돌아다닌 게 유튜브 영상으로 꽤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김준혁 교수에게 공천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용민 사태 시즌2를 겪을 것이 뻔히 보이는데 뭐 하러 그런 공천을 하겠는가? 그런데 민주당은 그렇게 했다. 김준혁 교수의 상대 후보가 누구인지 찾아보니 국민의힘의 이수정 후보였다. 경기 수원정의 선거는 이상한 교수와 더 이상한 교수의 대결이 되었다.

사학 쪽 선생님들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진행자는 자꾸 자극적인 발언을 하도록 질문하거나 유도하고 사학 쪽 선생님들은 난감해하며 그런 게 아니라고 일반인들의 오해를 설명하는 구도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비-전공자들에게 널리 퍼진 근본 없는 헛소문을 전공자가 정리해 준다는 설정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그런 것은 상관없이 조회수나 높이려고 자극적으로 영상을 만들려고 했는데 선생님들이 응하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일반적인 사학 쪽 선생님들은 여간해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속 시원한 개소리를 해주지 않고 지루하고 답답하며 복잡하지만 어쨌든 근본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김준혁 교수의 독특한 점은 여기에 있다. 박사학위를 받을지 말지 불확실한 선생님도 학계의 연구 성과를 언급하며 일반인들의 오해를 해명하려고 하고, 박사학위는 있으나 어차피 교수가 아니므로 아무 말이나 해도 그다지 타격받지 않을 선생님도 자기가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데, 김준혁 교수는 멀쩡히 교수인데도 무리해서라도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의 기대를 한 발 앞서 나가 아무 말을 해버린다.

김준혁 교수가 언제부터 그런 식으로 활동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런 식의 발언이 50-60대 민주당 지지 성향의 아저씨들이 좋아할 만한 것임은 분명하다.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어떤 아저씨가 김준혁 교수의 강연을 듣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고 나에게 이야기한 적 있다. 강의를 들으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감동적이다, 김준혁 교수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고 그 아저씨는 말했다. 사학자가 정상적인 강의를 하는데 가슴이 뻥 뚫릴 리는 없다. 일본 욕하고 친일파 욕하면서 저질스러운 말을 적절히 섞었을 때나 나올 법한 반응이다. 아마도 김준혁 교수는 일반인들과의 활동을 통해서 어떤 말을 하면 아저씨들이 좋아하는지 체득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단순히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할 뿐 아니라 한 발 앞선 망언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유혹이 역사학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 <매불쇼>에 철학박사 선생님이 출연한 적이 있었다. 철학박사 선생님이 초기에 <매불쇼>에 출연했을 때는 멀쩡한 이야기를 (여느 박사들처럼) 재미없게 하고 진행자나 패널들이 지루하다고 아우성치는 설정이었는데, 회차가 넘어갈수록 철학 내용에 정치색이 약간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원래 <매불쇼> 자체가 멀쩡한 것을 끌어와서 억지로 정치색 넣고 민자당 계열 정당을 욕하는 게 흥행 포인트이기 때문에 방송 내용 자체는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 선생님이 그런 곳에 나와서 그런 내용의 방송을 하니 약간 실망스러우면서도 안타깝기도 했다. 내가 그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대학원 수업 청강 중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받은 인상으로는 저런 곳에 나가서 저런 것을 할 분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나중에 그 선생님은 비트겐슈타인을 끌고 와서 윤석열 대통령을 욕하는 내용의 영상까지 찍었다. 썸네일에 비트겐슈타인 어쩌고 찍힌 거 보고 나는 ‘아, 저 선생님 망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영상에 보이는 선생님의 말투나 표정 같은 것이 마치 2007년 대선에서 BBK 발표하는 고승덕 변호사와 같아서 ‘저 선생님도 저런 건 원치 않는데 억지로 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억지로 꾸역꾸역 억지를 쓰던 선생님은 도저히 못 참겠는지 “사실, 이거 안 하려고 했는데 작가가 억지로 시켰어요”라고 말했다. 그게 그 선생님의 <매불쇼> 마지막 출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선생님이야 학부에서 공학 전공하고 회사 다니다가 철학 공부하려고 대학원을 다닌 분이라 유튜브 채널에서의 얄팍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멀쩡한 사람이라도 곤궁한 상태에 처한 사람은 그런 유혹에 일시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 또,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 달라서 가벼운 유혹으로도 양아치나 사기꾼의 길에 쉽게 들어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전적으로 당뇨병 환자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도둑놈이나 사기꾼이 될 확률이 높은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뇨병 발병 위험이 높은 사람들이 음식 조심하고 운동하고 건강관리 잘 해야 하는 것처럼, 천성이 경박하고 저열한 사람들은 사람을 가려서 만나고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내가 그 정도로 천성이 경박하지는 않은 것 같으나,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 것은 장담할 것이 아니니, 비록 지금은 거지 같이 살고 있더라도 아무나 만나지 말고 아무에게나 도움받지 말아야겠다.

* 링크: [SBS] 김준혁 민주당 후보 “김활란 총장이 미군에 이대생 성상납”...이대도 “사과하고 사퇴해야” /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 www.youtube.com/watch?v=hWowk3pUofw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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