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아스 헨셴(Tobias Henschen)이 쓴 『거시경제학에서의 인과성과 객관성』(Causality and Objectivity in Macroeconomics)이 몇 달 전에 출판되었다. 내가 거시경제학에서의 인과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로 마음만 먹고 사실상 진척이 거의 없었는데, 마침 헨셴의 책이 올해 출판되었으니 이 책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보아야겠다. 아직 안 읽어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모네타(Alessio Moneta), 라이스(Julian Reiss), 로젠버그(Alex Rosenberg)가 추천사를 썼으니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헨셴의 이력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보이는데, 2001년에 철학과 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2009년에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10년에 하이데거의 과학철학과 언어에 관한 책을 출판했다는 것이다. 헨셴이 일반 과학철학, 경제학의 철학, 칸트 철학에 관한 다양한 논문을 썼다는 것은 그렇다고 치겠는데, 경제학의 철학과 아무 관련도 없어 보이는 하이데거로 무슨 내용의 책을 썼을까? 읽고 싶지는 않지만 아주 약간 궁금하기는 하다.
분석철학 쪽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헨셴 말고도 대륙철학을 다룬 사람들이 종종 있다. 피터 싱어 같은 경우도 『Hegel: A Very Short Introduction』 같은 헤겔 개론서를 쓰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이병덕 선생님 등이 분석적 헤겔주의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심리철학 쪽에서는 현상학적인 것을 끌고 오는 경우도 있다. 훌륭하신 분들이 이러한데 대륙철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무슨 특별한 의견이 있겠는가? 나는 대륙철학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생산성에 있어서는 분석철학이 대륙철학보다 확실히 더 낫다고 보는데, 이에 대해서는 대륙철학 전공자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내가 관찰하기로, 대륙철학에 관한 분석철학 대학원생들의 태도는 대강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유형은 관망자이다. 대륙철학에 뭔가 좋은 점이 있기는 있겠으나 잘 모르겠고 딱히 힘들여 알고 싶지 않으나 대륙철학 애호가들의 망상이나 경거망동을 대륙철학 자체나 대륙철학 전공자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온건파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의심자이다. 대륙철학에 무언가 좋은 점이 있더라도 그 못지않게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다. 학부 때 대륙철학 수업을 꽤 열심히 들었고 대학원 와서 가끔 대륙철학 전공자들의 발표를 들은 사람들 중 일부가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 유형은 적대자들이다. 대륙철학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까지 생각했다가 회심하고 분석철학에 귀순한 사람들 중 일부가 적대자가 된다. 탈북 주민들이 북한 욕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저널 클럽 끝나고 점심 먹으러 가면서 내가 올해 출판된 헨셴의 단행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헨셴이 하이데거 관련 저작까지 출판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동료 대학원생은 비교적 최근에 학회에서 현상학 전공자의 발표를 들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이론이나 개념 하나로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다 된다는 것이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 동료 대학원생은 의심스러워했다. 동료 대학원생은 두 번째 유형인 의심자였다. 마침 그 날 저널 클럽에서 발제한 논문이 양자 역학에 관한 철학 논문이었다. 나와 동료 대학원생은 둘 다 문과 출신이라 논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동료 대학원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에서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말을 하는데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다 된다고 말하잖아요? 나는 양자역학을 모르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맞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정말 그러겠죠? 만약에 현상학이 양자역학 같은 것이라면 어떨까요? 현상학이 철학에서의 양자역학 같은 것이고 현상학이 말하는 게 정말로 진리이고, 전공자들은 그걸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걸 보지 못하는 눈먼 자들이라면?”
내 말을 들은 동료 대학원생은 “어...” 하고 몇 초 간 말을 잇지 못하더니 “아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2024.04.29.)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