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대학 콜로키움에서 김범준 교수의 강연을 보고 왔다. 강연 제목은 <사회적 원자와 통계물리학>이었다. 이번 콜로키움에서 한 강연은 예전에 보았던 다른 강연과 큰 틀에서는 비슷했지만 사회과학 하는 사람들이 흥미를 보일 만한 요소에 더 초점을 맞춘 것 같았다. 가령, 강연자는 인간 행위자를 사회적 원자로 본다는 것은 그 행위자의 지능이나 여타 다른 속성을 고려대상으로 넣지 않는 것인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등의 질문을 강연 중간중간에 참석자들에게 던졌다. 참석자들은 주로 사회과학대학의 교수나 대학원생인 것 같았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사회과학대학 콜로키움에서 한 연사를 두 번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참석자들, 특히 교수들이 어떤 질문을 하는지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강연자가 제시한 모형에 관한 질문을 했다. 확률값을 이렇게 바꾸면 이러저러한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이에 강연자는 그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참고하겠다고 했다, 투표자 모형에서 소통채널 추가확률 p가 0에 가까울수록 평균의견 m은 -1(안 좋은 선택)에 수렴하고 p가 1(좋은 선택)에 가까울수록 m은 1에 수렴하는데 p가 0.70이면 m가 1 쪽으로 가다가 결국 –1에 수렴하게 되는데 이건 무엇을 보여주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강연자는 소통 채널이 애매하게 설정되어 있으면 오랜 시간에 걸쳐 잘못된 선택을 하는 쪽으로 의견수렴이 된다고 해석했다. 모형이나 사례에 관한 질문이 나온 다음에는 철학 비슷한 질문이 나오더니 철학적인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을 사회적 원자로 본다면 미시 수준과 거시 수준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건 일종의 창발적 속성을 지니는 것 아니냐는 질문부터 그렇다면 설명은 무엇이냐, 법칙 같은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강연과 질의응답까지 들으니, 내가 학위를 받고 실적을 내고 자리를 잡는 것이 문제이지 경제학의 철학이나 사회과학의 철학에 사회과학자들이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회과학대학 교수들이 과학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면서, 대강 밑밥을 깔고 사회과학 모형을 적절히 제시하고 그와 관련된 철학적 쟁점을 던지고 가능한 답변을 몇 개 제시하는 식으로 강연을 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강연자료의 맨 마지막 슬라이드에는 김범준 교수가 제시한 토론거리가 있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 고전경제학의 infinitely-intelligent model과 통계물리학의 zero-intelligence model.
•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사회적 원자’의 유용성
• ‘사회적 원자’로 할 수 있는 예측과 할 수 없는 예측?
• Pattern의 결정론적 성격과 개인의 자유의지는 양립?
토론거리는 질의응답 시간에 거의 논의되지는 않았다. 참석자들이 제기한 철학적인 질문에 김범준 교수는 명확하게 답하지 않았는데, 아마 참석자들도 그런 질문이 떠오른 것이지 강연자에게 그에 대한 명확한 견해까지 요구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는 물리학자가 답변하는 것보다 철학자가 답변하는 것이 더 좋을 질문이기 때문이다. 통계물리학이 멈춘 곳이 과학철학의 출발점이 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어떨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사회물리학과 관련된 초학제 연구단을 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김범준 교수는 경제학자와 협업하여 쓴 논문이 두 편이라고 하니까 물리학자와 경제학자가 협업하는 것은 하나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고, 여기에 철학자가 끼어드는 게 문제인데 구실만 잘 만들면 마찰 없이 끼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대충 위와 같은 구상을 하며 한편으로 어떻게 졸업을 할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침 옆에 있던 농경제학과 대학원생이 강연자에게 사회물리학을 하려면 어느 정도 물리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김범준 교수는 사회물리학에서 요구하는 물리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다면서, 슈뢰딩거 방정식 같은 것을 풀 필요도 없고 일반 물리도 다 볼 필요도 없고 필요한 부분이 있을 때마다 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저희 대학원생 중에 경제학과 학부생이 있었는데요, 처음에 잘 할 수 있을지 걱정 많이 했는데 아무 문제 없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큰 문제 없을 겁니다.”
지도학생 중에 경제학과 출신 학생이 있었다는 김범준 교수의 말을 듣고 무언가가 떠올랐다. 혹시, 그 사람인가? 콜로키움이 끝난 뒤 김범준 교수에게 다가갔다. 김범준 교수에게 질문할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저는 개인적인 질문을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아까 지도학생 중에 경제학과 출신 학생이 있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 학생의 텝스 점수가 970점이 넘지 않았나요?” 김범준 교수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오, 맞아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 대답에 나도 놀랐다. “제가 그 학생보고 선생님께 가라고 했거든요. 진짜로 갔네요.”
이야기는 대강 이렇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학기마다 적어도 학부생 한두 명씩은 진로 문제와 관련하여 나를 찾아왔다. 대부분의 경우, 본인들 말로는 과학철학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데 다 들어보면 과학철학이 아닌 것을 과학철학이라고 잘못 알고 있거나 과학철학에 관심이 있기는 있으나 대학원에 올 정도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찾아온 학생 중 경제학과 학부생도 있었는데, 그 학생도 과학철학에 대한 호감은 있었지만 관심의 정도가 깊지는 않았다. 그 학생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일에 접근하고 싶어 했다. 과학철학은 그러한 작업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경제학이 사회과학이 다루는 현상 중 상당 부분을 설명하거나 설명하고자 한다면, 경제학의 철학은 경제학이 다루는 현상이 아니라 경제학을 다루기 때문에 딱히 사회 현상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철학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서 사회 현상에 대해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양아치이거나 사기꾼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 학생은 사회물리학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다.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대개는 그 분야에 대해 아는 건 피상적인 내용뿐이지만 대강 재미있어 보이더라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그 학생은 그냥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물리학과의 수업을 수강했고 성적도 괜찮았다고 했다. 그러면 물리학과 대학원에 가면 되지 않나? 사회물리학을 하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 현상을 다룰 수 있을 테니 그 학생이 원하는 바에 훨씬 더 부합할 것이었다.
실제로 그 학생은 나를 찾아오기 전에 김범준 교수를 만나서 물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할 뜻을 밝혔다고 했다. 그런데 김범준 교수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다른 학과 학생도 흔쾌히 환영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경제학과 학생이 물리학을 하겠다고 하니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물리학과 수업도 수강했고 성적도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김범준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이에 그 학부생은 승부수를 던졌다. “제 텝스 점수가 970점이 넘습니다.” 김범준 교수가 약간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김범준 교수의 지도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김범준 교수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던 모양인데 영어 능통자가 오니 약간 생각이 달라졌던 모양이다.
학생의 이야기를 다 들으니 방향이 명확히 잡혔다. 경제학과 학부생이 과학철학을 한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가장 몸값이 비싸게 될 것인가? 1순위는 물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과학철학 박사과정에 들어오는 것이고, 2순위는 경제학과 석사학위를 받고 과학철학 박사과정에 들어오는 것이며, 3순위는 그냥 과학철학 석사과정에 들어오는 것이다. 왜 다른 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게 과학철학을 하는 데 유리한가? 어차피 철학은 많이 배운다고 잘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머리가 좋아야 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머리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치고, 남들보다 과학에 더 특화되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더 많아지니까 경쟁력이 더 생긴다. 다른 학과의 석사학위가 있을 때의 또 다른 이점은, 철학 하다가 안 풀려도 괜찮은 퇴로가 확보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진로와 관련하여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주어진 자원을 감안하여 몸값을 극대화하는 전략만을 말한다. 나는 나에게 면담을 요청한 학부생들에게 단 한 번도 흥미나 열정 같은 소리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흥미나 열정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도 있고 없다가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가 되겠다던 어린아이들이 왜 자라면서 과학과 멀어지는가? 교육과정에 결함이 있어서? 아니다. 사회가 이공계를 찬밥 취급해서? 아니다. 수학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흥미가 없어서 수학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수학을 못 하니까 흥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흥미나 열정 같은 소리는 과학자가 되겠다던 학생이 의대 지원할 때나 할 법한 것이지 수학 포기자를 두고 할 소리가 아니다. 첫째는 재능이고, 둘째는 환경이며, 흥미나 열정 같은 건 알 바가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열정 같은 소리 하는 것은, 재능도 없고 환경도 후진 사람들에게 자기는 열정까지 있다고 과시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나를 찾아온 학부생들한테 진실되게 말했고, 그 경제학과 학생이 마침 나의 학부 후배이기도 해서 더욱 진실되게 말했다. 그랬더니, 정말로 김범준 교수한테 갔고, 물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김범준 교수는 경제학과 학부생이 물리학과 대학원에 간 사연을 듣고는 “그 학생이 지금 이 학교 데이터 사이언스 박사과정에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내가 “세상에, 제가 한 사람의 인생을 구했네요!”라고 하니 김범준 교수는 아이처럼 웃었다.
기숙사에 와서 생각해보니, 몇 년 전에 했던 나의 선행은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한 것으로 그친 게 아니었다. 그 학부생이 물리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김범준 교수의 선입견이 깨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한 물리학자의 선입견을 깨는 계기도 된 것이다.
남의 인생을 구했으니 이제는 나의 인생도 구해야 할 것 같다. 어떻게든 졸업을 해야겠다.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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