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전원주택 단지를 조성하던 건설업체가 길가에 있던 집을 매입하여 원래 있던 건물을 철거했다. 전원주택인지 연립주택인지 확실하게 듣지는 못했으나 어쨌든 새로 주택을 만들기 위해 원래 있던 건물을 철거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빈 땅이 된 곳에서 나는 거기에 개비온 만들 때 쓸 예쁜 돌멩이가 있나 찾다가 넓적한 돌덩이 두 개를 발견했다. 건축자재에 손을 대는 것은 도둑질이라서 하면 안 되지만, 기초공사를 위해 깔아놓은 자갈도 아니고 땅바닥에 있는 돌멩이는 공사에 긴요하게 필요한 것도 아닌 데다 공사 중에 휩쓸려서 땅속으로 들어가거나 땅을 파헤칠 때 어디론가 버려질 것이어서 내가 가져가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덩이는 생각보다 컸다. 그냥 좀 넓적한 돌덩이가 흙에 박힌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손으로 들어내려고 했는데 돌덩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집에서 삽을 가져와서 몇 삽 파냈지만 돌덩이는 뽑히지 않았다. 한참 흙을 파내고서야 돌덩이가 원래 있던 집의 주춧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돌덩이를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그 때 옆으로 승용차가 지나갔다. 차가 멈추더니 운전석에서 누군가가 내렸다.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혹시, ◯◯◯씨인가요?”
어? 나를 어떻게 알아봤지? 동네에서 그런 식으로 일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알아볼 수도 있겠다. 내가 ◯◯◯ 맞다고 하니 그 사람은 자신이 전원주택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전원주택 시공사 사장을 만나게 되었다.
땅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돌을 캐던 거라서 나는 땅 주인에게 상황과 취지를 설명했다. 건설업체 사장은 밝게 웃으면서 얼마든지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걸 가져가실 수 있어요? 어떻게 뽑으셨대요?” 나는 답했다. “사실 이렇게 큰 줄 몰랐어요.” 사장은 공사 장비로 그 돌을 옮겨줄 수 없는데 지금 약속 때문에 가던 일이라 나중에 옮겨주겠다고 했다.
건설업체 사장은 나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내가 연락을 안 해서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가 전원주택 동쪽 진입로에 아스팔트를 깨부수어 제거하고, 보강토 블록으로 화단을 만들고, 나무를 심으며 길을 좁히고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안내문을 돌리니 건설업체 사장은 나를 만나고 싶어 했는데, 나는 해당 토지를 팔 생각도 없고 임대할 생각도 없고 내가 하고자 하는 데 건설업체의 도움이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으니 굳이 건설업체 사장을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이렇게 서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어차피 내가 동쪽 진입로 자체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대형 차량의 진입만을 막으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원주택 입주민들의 차량, 청소차량, 소방차량 등이 진입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건설업체에서도 서쪽 진입로로 공사차량이 통행한 지 꽤 되었기 때문에, 동쪽 진입로와 관련하여 나와 건설업체 사장이 따로 타협 볼 것은 없었다. 건설업체 사장이 나를 만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원주택 단지와 동쪽 진입로에 있는 나의 토지 사이에는 약 3천 평 정도 되는 빈 땅이 있다. 그 땅은 원래 우리집 소유의 임야였으나 아버지가 헐값에 판 뒤 주인이 몇 번 바뀌었고, 현 소유주는 경매로 해당 토지를 매입했으나 유치권이 걸려 있어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체 사장은 해당 토지를 사서 전원주택을 더 짓고 싶은데 해당 토지의 주인은 값을 터무니없게 높게 불러서 땅을 못 사고 있다고 한다. 해당 토지의 소유주가 자신의 토지를 다른 업체에 넘기거나 자신이 직접 전원주택을 짓지 못하도록 전원주택 건설업체에서는 해당 토지의 하수도를 합법적으로 막아서 건물을 못 짓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내가 동쪽 진입로를 줄이니 해당 토지에 건설 장비가 못 들어가게 되어 반가웠던 것이다.
건설업체 사장은 동쪽 진입로가 포함된 나의 토지를 자신에게 안 팔아도 좋으니 중간에 낀 땅의 소유주에게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길을 팔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고 그냥 동네에서 조용히 살려고 그렇게 한 것이라고 답했다. 사장은 당장 카페라도 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선약이 있어서 다음 주에 만나자고 했다. 그러고 나서 2주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아마 그 때 서로 할 이야기는 다 했기 때문에 굳이 따로 안 만나도 되는 상황이라 그러는 것 같다.
건설업체 사장이 떠난 후, 나는 곧바로 돌덩이를 집으로 옮겼다. 업체 사장이 옮겨준다고 했지만 굳이 그런 일로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도저히 들고 갈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들어 올리면 복숭아뼈에서 정강이뼈 정도까지 잠시 들어올릴 수는 있으나 집까지 들고 갈 수는 없었다. 집까지 흙길로 되어 있으면 굴려서 가져갈 텐데 시멘트 길이라서 굴리다가 길과 돌이 모두 훼손될 판이었다. 집에서 망가진 손수레를 가져왔다. 이 정도 무게면 돌을 옮기다가 손수레가 망가질 가능성이 높아서 아예 망가진 손수레에 실어서 집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씩 돌을 옮긴 뒤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돌덩이가 개비온에 넣기에는 너무 커서 경계석으로 쓰기로 했다. 어디에 놓을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돌덩이는 얼마나 무거울까? 화강암은 비중이 2.5에서 2.7 정도 된다. 한 변의 길이가 대략 30-40cm 정도 되니까 무게가 약 110-120kg 정도 될 것이다. 사실 그렇게 무겁지는 않은 것이다.
돌을 옮기면서 나는 100kg이 약간 넘는 돌덩이도 못 들어서 쩔쩔매는데 피트니스 클럽 같은 데서 3대 500을 든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한 번에 200kg가 넘는 쇳덩이를 드나 싶었다. 돌덩이의 작용점이 역기와 다르기는 하겠으나, 그렇다고 돌덩이에 구멍을 뚫고 쇠파이프 같은 것을 낀다고 해도 내가 돌덩이 두 개를 한 번에 들 수는 없을 것 같다. 도대체 200kg를 어떻게 들까? 이제는 노동을 그만하고 운동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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