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6

<세계인문학포럼>에 대한 나의 인식 변화



제7회 <세계인문학포럼>이 11월에 열린다는 소식을 학회 공지메일을 통해 알았다. <세계인문학포럼>이라고 하는 이름부터 수상하다. 철학도 아니고 역사도 아니고 문학도 아니고 인문학이란다. 한 학문에서도 분야별로 얼마나 논의할 것이 많은데 인문학을 통으로 묶어서 포럼으로 만든다니 멀쩡한 이야기가 나와봤자 얼마나 나오겠는가? 게다가, 포럼의 대주제나 중주제도 공존, 소통, 연대, 상생, 화합 같은, 인문학쟁이들이 약 팔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그런데도 그런 게 아직도 안 망하고 벌써 7회째 열린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저런 데서 발표를 하는 걸까? 어디 욕이나 한 번 해보아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세계인문학포럼> 홈페이지를 살펴보았다.

올해 기조강연의 연사로 초청된 사람은, 자크 오몽, 백영서, 마이크 김, 케스틴 말름켸르라고 한다. 다 모르는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이라 섣불리 욕을 할 수 없다. 세부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분과세션 주제들도 다 수상하다. 다 무슨 소통, 연대, 공존, 상생 같은 단어가 들어가 있다. 수상하다, 수상하다 하면서 죽 넘겨보다가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학회에서 만난 선생님이었다. 훌륭한 분으로 알고 있는데 왜 여기서 발표하지? 인공지능 윤리와 관련하여 발표하는 것이었다. 하긴, 인공지능 윤리를 꼭 과학철학회나 윤리학회 같은 데서만 발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학회마다 참가비가 있고 숙박비를 추가로 내야 할 수도 있는데 <세계인문학포럼>에 참가하려면 얼마를 내야 할까? 참가비가 비싸다면 굳이 <세계인문학포럼> 같은 데 참석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세부 전공이 같은 전공자들 앞에서 발표한다면 <세계인문학포럼>의 분과세션에서 발표하는 것보다 더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계인문학포럼>에서는 “모든 발표자에게는 소정의 발표비가 지급되며, 발표일에는 숙박과 식사가 제공”되며 “국외 거주 발표자의 경우, 항공료 지원이 포함”된다고 한다. 학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참가비를 내면서 노동력까지 제공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세계인문학포럼>에서는 발표비까지 제공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세계인문학포럼>에 발표자로 참석하려면 어떤 주제로 발표해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고, 또 금방 떠올랐다. 다른 학회 사람들이 보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내 실력이 성장하는 대로 <세계인문학포럼>에 발표자 신청을 할 생각이다.

그런데 나 혼자 가면 심심하지 않을까? 다른 과학철학 전공자들을 꼬드겨서 여러 사람이 인공지능 윤리로 발표하겠다고 하면 세부세션 하나를 통째로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개최지는 부산이라고 한다. 부산 바다를 보면서 회를 한 접시 먹는다고 해보니 괜찮겠다 싶었다. 교통비를 학과에서 지원받을 수 있으면, 학회 참석을 핑계로 하여 저렴하게 부산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래서 내가 사람들의 인식이 마치 사회 현상의 주요 원인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일련의 작업을 보면 그것이 연구로서 가치를 지니기나 하는지 의심부터 하는 것이다. <세계인문학포럼>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뀌는 데는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 뱀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제3회 <세계인문학포럼>에는 기조강연 연사로 김영식 선생님, 이태수 선생님, 피터 갤리슨이 초청되었다고 한다.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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