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ward Grant (2010), The Nature of Natural Philosophy in the Late Middle Ages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pp. 312-.
Edward Grant (1978), “Aristotelianism and the Longevity of the Medieval World View”, History of Science 16, pp. 93-106. ]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핵심은 물리학, 논리학, 의학
중세의 세계관은 크게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근본적인 구조, 다른 하나는 구조를 이루는 원소들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할 법칙.
중세 세계관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기반하여 기독교 교리가 섞여 만들어진 단순한 형태의 구조를 지님.
크게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뉘고 천상계는 거의 완벽한 제5원소인 에테르로 꽉 찬 상태
문제는 이 구조 속에서 물체가 운동하거나 상호작용을 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할 합의된 원리가 없었다는 점.
그랜트는 안정적이고 단순한 구조와 함께 작동 구조가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중세를 넘어 17세기까지 장수하는데 일조했다고 주장함.
그랜트는 운동 원리에 대한 중세의 담론이 일어난 방식에서 문제를 찾음.
대부분의 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에 대한 주석에서 시작하며, 일련의 질문들로 이루어짐. 누군가의 주석과 질문에 대한 답과 새로운 질문이 수세기에 걸쳐 쌓이기도 한 것.
이러한 특징이 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장수에 영향을 미쳤는가?
주석과 질문에 의한 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원리를 원자화함.
학자들이 하나의 작은 질문이나 원리에 집착하게 하여 전체 세계관을 전복시킬만한 비-일관성을 찾지 못하도록 가렸다는 것.
안정적이고 단순한 구조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세계관은 작은 질문으로 전복될만한 것이 아니었음.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전복되지 않은 채로도 충분히 많은 파편화된 담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
15세기 말에 가서는 상황이 변함.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더 이상 생산성을 갖지 못함.
15세기 말의 담론은 대부분 이전 담론의 단순한 반복에 지나지 않았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생명력을 잃어감.
결국 16세기에 가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공격받기 시작함.
가장 큰 문제는 르네상스와 함께 부활한 그리스의 고대 문헌이 양산되고 보급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주석이 붙어서 그 일관성을 크게 잃고 말았다는 점.
그랜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전복된 가장 큰 이유가 유연성이 과했기 때문으로 평가함.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너무 많은 이들의 일관성 없는 주장을 받아 들여서 전복될 수밖에 없었다고 봄.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전혀 다른 호환되지 않는 세계관과 작동 원리에 의해 전복됨.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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