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사람이 한국 사람들은 왜 불행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여러 조건을 보면 그렇게까지 불행하다고 느낄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왜들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은 진지하게 물었지만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아직 덜 망해서 그러는 것이고 확실하게 망하면 사람들은 훨씬 행복감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사람은 언제 마음이 동요하는가? 주변 사람들이 잘 될 때다. 2021년도 결산 기준으로 이건희 아들 이재용은 2577억 원을 배당받았다. 어떤 기분이 드는가? 아무 느낌이 안 든다. 이건희 딸 이부진은 1177억 원을 배당받았다. 역시나 아무 느낌이 안 든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가상 화폐에 투자하여 1천만 원을 벌었다고 해보자. 웬만큼 친하지 않다면 기분이 묘해지다가 약간씩 불쾌함이 치밀어오를 것이다. 박탈감은 나와 아무 상관 없이 사는 사람이 1천억 원을 벌 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대충 가깝게 지내기는 하지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놈이 가상 화폐로 1천만 원을 벌 때 느끼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남과 비교해서 불행하다면서 하나마나한 소리나 진지하게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주위 사람과 비교해서 내가 불행하다는 것은 내 주변에 잘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망했지만 내 주변도 싹 다 망했으면 그렇게까지 불행하지 않다. 항상 비교한다는 것은 항상 변동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라디오 같은 데서 이상한 독문학자와의 대담 같은 거나 듣고 한국 교육이 썩었네, 개천에서 용이 안 나오네, 빈부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네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학부모들도 있다. 그들조차도 가진 돈을 쥐어짜서 사교육에 쏟아붓는다. 왜 그럴까? 단지 남들도 그렇게 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자식을 대학에 잘 보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주변 사람들 자녀의 입시가 싹 다 망하면 사교육에 무리하게 돈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이 지랄 맞게 사는 것은, 조금 더 쥐어 짜내면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믿고 있고 여전히 주변에서 잘 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잘된 그 사람이 자기가 될 수도 있었다고 믿고 어쩌면 앞으로 자기도 잘될 수도 있다고 믿으니까 그러는 것이다. 정말 망했다면 빨리 태세전환을 해야지 왜들 그러고 있겠는가?
어설프게 힘든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망한다면, 그러니까 빈부 격차가 지금보다 심해져서 개인이 노력해봤자 당대에는 그 격차를 극복할 수 없다고 다들 믿게 되고, 정말로 잘 사는 집의 아이들이 단지 비싼 교육이 아니라 정말로 교육을 받아서 못 사는 집 아이들과의 차이가 로열젤리 먹은 벌과 일반 벌의 차이만큼 나게 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화끈하게 더 올라서 서울 거주를 꿈도 못 꾸게 된다면, 그렇게 박탈감이 안 생길 정도로 계급 격차가 벌어진다면, 한국 사람들의 심리적 만족감이 오히려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결혼도 쉽게 하고 아이도 많이 낳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좋은 상태인가? 반대로 물어볼 수도 있겠다. 지금처럼 사람들의 심리적 만족감이 낮은 상태가 정말 안 좋은 상태인가?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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