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1

아로니아 분주



오랜만에 만난 대학원 선배가 내 안부를 물으면서 나무는 잘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최근에 아로니아 나무를 심은 이야기를 했다.


올해는 할 일이 많아서 웬만하면 나무를 안 심으려고 했는데, 조정기일에 법원에서 현장소장이 너무 싸가지없게 말해서 아로니아 나무 한 그루를 파내서 농로와 사유지 경계에 옮겨심었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만 옮겨심으면 들어간 힘에 비해서 너무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로니아 나무를 열네 개로 쪼개서 농로 남쪽 출구의 주요 지점에 나누어 심었다.


작년에 아사히베리 나무를 옮겨심다가 실수로 떨어져나온 가지들을 땅에 심었는데 그 중 두 개가 살아서 올해 봄에 다시 잎이 나고 있다. 작년의 경험을 더듬어서 아로니아 나무를 쪼개보았다. 어떻게든 살 수밖에 없는 것 하나, 비교적 굵은 뿌리까지 같이 쪼갠 것 네 개, 잔뿌리가 달린 줄기 아홉 개, 이렇게 한 그루를 열네 개로 쪼개서 심었다. 처음에 나는 열네 개 중 서너 개 정도 살 것으로 예상했고, 나머지는 뿌리내리지 않더라도 한 달 정도 나무인 척하며 시간을 벌어 어머니의 심리적 위안에 도움을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열네 개 모두에서 잎이 나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 열네 그루가 될지도 모른다.





작년보다 내 솜씨가 는 것인지, 아니면 아로니아가 아사히베리보다 생명력이 강한 것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아로니아는 삽목(꺾꽂이)과 분주(포기나누기) 등으로도 번식이 가능하다고 한다. 당시 내가 알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대충 감으로 네 개는 분주를 하고 아홉 개는 삽목을 했던 것이었다.


내가 선배한테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한 것은 아니고, 간단히 한 그루를 열네 개로 쪼갠 이야기를 하면서 삽목, 분주, 취목(휘묻이)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나무 심는 방법에 대한 용어가 참 많구나. 예전에 그런 것을 배웠던가 싶네.” 그 선배는 어디에서 그런 것을 배웠을까? 선배는 학부 전공이 원예학이라고 답했다. 세상에! 나는 그 선배 전공이 사진인 줄 알고 있었는데, 사진은 석사 전공이었고 학부 전공이 원예학이었던 것이다. 내가 원예학과 졸업생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었던 것인가? 지식을 뽐낸 것도 아닌데도 괜히 민망했다. 그러자 선배는 웃으면서 “나는 어차피 책으로만 배웠지 나무를 직접 심어본 적이 없어서 괜찮다”고 말했다.


사실, 이것보다 훨씬 민망했던 경험이 있다. 예전에 구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의 일이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어떤 아주머니가 나한테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나는 물리학을 잘 모르는데 아주머니는 자꾸 물리학에 관련된 것을 물어보았다. 질문을 들어보니까 아예 몰라서 묻는 것 같지는 않고 뭔가 아는 것 같은데 묻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주머니가 참 똑똑하시네. 그런데 왜 자꾸 이런 것을 묻지?’ 하고 생각했다. 그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예전에 고등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쳤어요. 퇴직하고 와서 들어보니까 재미있네요. 잘 듣고 갑니다.” 전직 물리 교사라니! 도대체 내가 물리 교사 앞에서 뭘 한 건가 싶어서 어벙벙 했던 적이 있다.



(202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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