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 친척들하고 외가에 2박 3일 간 다녀왔다. 외할아버지 추도예배 겸 해서 다녀온 것이다.
친척들끼리 모이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마련이다. 나는 이번에 셋째 이모부를 통해서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젊었을 때 중동으로 가려고 했으나 할머니가 말려서 가지 않은 줄 알았다. 당시는 자식을 여섯 명씩 낳아 기르던 시절인데 아버지는 외아들이었으니 할머니가 그렇게 울고불고 말렸던 것도 완전히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중동에 가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할머니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중동에 가겠다고 미장 기술을 배웠지만 실기시험에서 떨어졌던 것이다. 그제야 뭔가 미심쩍다 싶은 퍼즐 몇 개가 맞아떨어졌다. 아버지가 중동 가려고 기술을 배웠다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솜씨가 별로였는지, 다른 사람이 말린다고 해서 아버지가 그 말을 들을 분이 아닌데 왜 할머니 말씀을 그렇게 순순히 들었는지 등의 의문이 모두 해소되었다.
하여간 부모-자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셋째 이모부는 아들(나에게는 이종사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종사촌 동생이 이과 체질이고 집중하면 다른 아이들보다 금방 문제를 푸는데 집중력이 금방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중학교 때 상위권이었는데 한 번도 만점을 받지 못해서 만점을 받게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었다고 한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모부에게서도 듣고 이모에게서도 듣고 당사자인 이종사촌 동생에게서도 들었다. 중학생 때 시험을 보면 실수로 꼭 몇 개씩 틀리니까 이모부가 모의고사처럼 어디서 문제를 구해와서 주말에 문제를 풀게 하고 만점 나올 때까지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했는데 결국 만점을 못 받았다는 것이다. 이모부는 꼼꼼하고 틀림없는 분이지만 자식은 그렇지 않았는데, 이모부는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중학생 때 이야기가 나오자 외삼촌은 중학교 다닐 때 방학에 우리집에 와서 지낸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대학을 졸업했으니 중학교 공부를 과외 비슷하게 가르쳐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외삼촌이 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이 이상해서 아버지 없을 때 문제집 답지를 보니 가끔씩 아버지가 정답을 잘못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외삼촌은 가끔씩 정답지를 보면서 혼자 웃었다고 한다.
나는 외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만 잘못 온 것이 맞다”고 말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시험 보고 오면 아버지는 내가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주었는데, 초등학생이던 내가 보아도 아버지가 참 못 가르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못 가르쳤다. 동생의 경우, 아버지가 틀린 문제를 너무 쓸데없이 장황하게 풀이를 해주어서 결국 울면서 해설을 듣기도 했다. 한 대도 안 맞았는데도 너무 지겨워서 울었던 것이다. 그런데 외삼촌한테 공부를 가르쳐줄 때는 심지어 정답까지 틀렸던 것이다.
이모부와 외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잘 안 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공부를 안 한 것이 아니라 공부가 잘 안 되었던 것뿐이다. 내가 게임에 몰두했던 것도 아니고(게임을 못한다), 친구들하고 놀러 다닌 것도 아니다(친구가 별로 없다). 공부를 해보려는 의지는 있었으나 그냥 공부가 잘 안 되었던 것뿐이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때 공부를 잘 하는 편이어서 기대가 컸는데 고등학교를 동네 고등학교가 아니라 비-평준화 학교로 가면서 성적이 안 나오니까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당시 내 눈에도 부모님이 걱정하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어머니는 전전긍긍해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티를 안 내려고 하면서도 더 전전긍긍하는 것이 보였다. 사실, 아버지는 큰소리만 땅땅 치지 정신력은 별로 강하지 않다.
아버지는 나나 동생이 중학생 때 성적이 괜찮게 나올 때는 “무슨 일을 하든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면 된다”며 마치 조국 교수처럼 말하더니 고등학교 가서 성적이 안 괜찮게 나오자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가 기숙사 학교라서 주말에나 집에 가는데, 집에 가면 아버지가 산에 가서 회초리를 꺾어 오라는 등, 하여간 황당한 것을 시켰다. 나름대로 가슴에 사무칠 만한 교훈이나 감동을 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생이 보기에도 아버지가 참 얄팍해 보였다. 가끔씩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정말 아무 내용도 없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를 백지에 뭘 잔뜩 쓰면서 말했다. 백지에 “공부를 왜 하는가?”, “인격”, 이런 것들을 썼던 것 같은데, 아버지는 말솜씨도 없었다. 언제는 편지도 썼다. “소년이로 학난성(少年易老 學難成)” 같은 문구는 아직도 기억나는데, 하여간 요점도 없고 내용도 없는 글을 길게도 썼다. 아버지는 글솜씨도 없었다.
부모들 중에는 자기 자식의 학습능력을 과대평가했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셋째 이모부나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남의 집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또 이모부가 사온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사실 사촌동생이 그렇게 똑똑한 애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어서, 나는 나와 내 집안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자식에 대한 적정 기대 수준은 아마도 자식 개인의 능력, 부모의 능력, 가문의 수준, 이렇게 세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텐데, 나의 경우에는 어느 측면에서 보든 그렇게 높은 기대를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과학 영재도 아니고, 부모가 그렇게 능력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친가 쪽에서는 공부를 못 하는 것이 집안 내력이다. 나와 8촌 이내에서 공부 잘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왜 그만큼 기대했는가? 어머니는 “그래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나는 “부모를 처음 해보는 것이었을 테니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전전긍긍해 하기만 했을 뿐 이모부처럼 불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전전긍긍하든 말든 그 점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부모를 처음 해보는 것이었을 테니 이해한다”는 말을 듣고 외삼촌은 “그러면 너는 너희 부모님보다 좋은 부모가 될 텐데 언제 부모가 될 것이냐?”고 물었다. 음... 그러게...
(2021.08.22.)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