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3

윤석열의 앉은 자세에 대한 칼럼들



윤석열의 앉은 자세를 다룬 칼럼 몇 편을 읽었다. 나는 윤석열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윤석열이 정장을 입고 다리를 벌리든, 요가복을 입고 다리를 벌리든, 다리를 벌리고 아이돌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든, 내가 알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통령이 그렇게 다리를 쩍 벌리고 있으면 문제가 될 것 같기는 하다. 가령, 독일의 메르켈 총리하고 정상회담을 하는데 윤석열이 그 맞은 편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있다고 해보자. 메르켈 총리가 성적 수치심이라도 느끼면 외교 문제로 비화될 것이고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될 것이다. 정말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다면 의전팀에서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하여간, 다리 좀 벌렸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을 보면 국가 지도자가 될 사람은 일거수일투족을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은 맞는 모양이다(물론 윤석열이 다리를 과도하게 벌린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윤석열이 다리 좀 벌린 것을 가지고 신문 칼럼으로 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윤석열이 다리를 쫙 벌리고 앉는다는 것과 그것이 이상한 행동이라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안다. 온라인 게시판이나 커뮤니티에서 놀리고 끝날 일이다. 그게 신문 칼럼에서 다룰 만한 사안인가? 그렇다고 해당 칼럼들에서 윤석열의 다리 벌리고 앉는 자세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한 것도 아니다.

어떤 칼럼에서 스스로를 “지식문화 연구자”라고 하는 필자는, “이데올로기와 교양의 상관관계, 상명하복・폭탄주・룸살롱・스폰서 같은 정치검찰 특유의 ‘서브컬처’(?)가 정치인식과 지적 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인지심리학, 사회학, 교양학 연구자들에게도 묻고 싶어진다”고 말한다. 이는 다리 벌리고 앉는 자세에서 정치검찰 특유의 하위문화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연구자 특유의 혜안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다. 윤석열이 싫으니까 그냥 아무 말이나 한 것이다. 정치검찰의 하위문화로서 다리 벌리고 앉기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김기춘, 우병우 등의 앉는 자세를 찾아보고, 이를 일반 검사의 앉는 자세를 비교하면 될 것이다. 정치검사에 가까운 정도와 앉을 때 벌리는 다리 각도의 상관관계 같은 것이 나올까? 아마도 그보다는 체중/키의 비율, 아니면 체지방 비율과 다리 각도의 상관관계가 더 밀접하게 나올 것이다.

또 다른 칼럼에서 어떤 필자는 윤석열의 몸을 보고 그가 돌봄을 전혀 모를 것이라고 추론하고 “그의 몸은 자유를 오해하고 낭비하며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권력을 앞장세워 살아간 결과 그 자체”라고 진단한다. 그걸 어떻게 알지? 필자는 윤석열이 “‘부정식품’밖에 먹을 수 없는 계급도 아니고, 자기돌봄으로서의 생활체육에 쓸 돈과 시간을 ‘먹고사니즘’에 의해 박탈당한 저임금 노동자, 자영업자도 아닌”데 그런 몸을 가졌으니 유죄라는 말한다.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윤석열의 몸에 유죄판결을 내린 필자는 곧바로 이렇게 말한다. “저렴한 식재료로 밥을 해 먹는 게 보편화된 독일에서는 총리 메르켈도 퇴근길에 장을 본다.” 그래, 메르켈 총리는 퇴근길에 장을 보니 돌봄을 아는 몸이겠다. 그래서 메르켈 총리의 몸은 무죄인가? 남의 몸을 가지고 유죄니 무죄니 따지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대충 외형만 놓고 보자면, 윤석열의 몸이나 메르켈의 몸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윤석열의 몸은 유죄이고 왜 메르켈의 몸은 유죄가 아닌가?

윤석열의 앉은 자세에 대한 칼럼들은, 윤석열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떤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그저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를 보여줄 뿐이다. 윤석열이 다리 벌리고 앉는 것에 대하여, 문화 같은 소리나 일삼아 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하던 대로 아무 말이나 하고, 신문사도 평소 하던 대로 글 한 편에 두서없이 이 말 저 말 아무 말이나 해놓는 것을 칼럼이랍시고 실어주고, 윤석열을 영웅처럼 떠받들다가 저 검찰총장은 해로운 검찰총장이라는 말 한 마디에 별다른 이유 없이 입장이 바뀐 사람들은 윤석열 욕하는 글만 보면 헬레레 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윤석열 다리 벌린 것 가지고 온갖 심각한 폼을 잡으며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기에는, 한정된 신문 지면에서 해야 할 논의가 너무 많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현자들은 좁쌀을 가지고도 우주를 논한다며 칼럼 필자들을 옹호하려 할지도 모르겠다. 현자들은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보통은 좁쌀 가지고는 좁쌀 같은 소리밖에 못 한다. 좁쌀 같은 소리나 하는 칼럼들이 유독 눈에 띤다. 신문 칼럼은 전문가가 써야 하는 것 같은데, 내 상식이 틀린 건가? 도대체 어느 분야에 전문성이 있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왜 신문 칼럼을 도맡아 쓰는가?

차라리, 정보기관의 전직 정보분석관 같은 사람들에게 필진 자리를 일부 내어주는 것은 어떨까? 전직 정보분석관들은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정당이나 기관의 내부 사정을 나름대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 타령이나 하면서 엉뚱한 소리나 늘어놓는 칼럼보다는 전직 정보분석관들이 쓴 칼럼이 훨씬 더 영양가가 있을 것이다.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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