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학교 홍보할 때 교양교육을 강화했다고 주장하는 대학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교양학부 이름에 휴먼 뭐시기를 넣는다든지 라틴어를 넣는다든지 하면서 인문학이니 교양이니 융합이니 하는 것들을 강조했던 것 같기도 하다. 대학들은 왜 그랬을까? 융합의 시대이고 통섭의 시대이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여서 그런가?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어떤 학교에서 교양수업이 이전보다 강화되었는지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공수업은 학교별로 비교하기가 비교적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량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 같은 과에서는 같은 수업이 열리고 배우는 내용이 표준화되어있어서 어느 범위까지 배우는지, 어떤 교재로 배우는지, 어떤 수준의 연습문제를 풀게 하는지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시간과 인력을 동원하면, 학생들이 어떤 질문을 하는지, 그러한 질문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까지도 알 수 있을 것이고,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이나 시험 답안지를 검토해서 학업성취도를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교양수업은 그러한 비교가 힘들다. 똑같은 책을 가지고 교양수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비교하기 힘들다. 플라톤의 <국가>를 가지고 교양수업을 한다고 해보자. 어떤 수업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시대적 배경이라든지, 철학사적 배경을 위주로 강의할 수도 있고, 다른 수업에는 논증 위주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예 삐딱선을 타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나름대로의 교육 목표가 있다면서 개소리를 하고 난장판을 치더라도 웬만하면 용인된다. 플라톤이 살았을 때의 사회를 이해해야 한다면서 고대 그리스 복장을 만들어 입든, 대화편을 대본 삼아 연극을 하든, 시를 쓰든, 학생들끼리 노닥거리든, 별 짓을 해도 용인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교양수업은 전공수업과 달리 후속 과정과 연결되기 않기 때문에 수업에서 난장판이 벌어져도 이후에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상한 수업을 듣고도 등록금 아까운 줄 모르고 만족해버리면 그에 대해 문제 삼기 힘들다.
교양수업을 강화했다고 주장하면서 몇 가지 실효성 없는 조치를 취하고 그 대신 홍보를 그럴싸하게 하면, 대외적으로는 학교 이미지를 좋게 만들 수 있고 대내적으로는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아무런 실질적인 개선 없이 홍보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대학에서 교양교육을 강화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와 별개로 대학들이 교양교육을 정말 강화한 것이 맞는지는 의심해볼 만한 것 같다.
(202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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