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0

몇 년 만에 들른 <풀무질>



학부 때 다니던 학교 근처에 <풀무질>이라는 서점이 있었다. 서울 시내에 몇 남지 않은 사회과학서점이다. <풀무질>의 경영이 어려워 폐업하고 새 주인이 서점을 인수한다고 한다.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가 <풀무질>에 들렀다. 책방 주인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오, 이게 몇 년 만이야? 어떻게 지냈어요?”

내가 학부 선후배들을 만날 일이 있어서 학교에 왔다고 하자 아저씨는 1991년 5월의 일을 말해주셨다. 아저씨는 김귀정 열사가 죽을 때 그 옆에 있었다고 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는 등 많이 다쳤고 아저씨도 죽을 뻔 했는데 겨우 빠져나왔다고 했다. 아저씨는 본인이 지은 『책방 풀무질』이라는 책을 펴서 <김귀정 누이>라는 글을 읽었다. 나는 그 글을 읽어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아저씨는 46쪽부터 50쪽까지, 건너뛰는 부분 없이 모두 읽었다.


“1991년 5월 25일 일요일 낮 12시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는 봄비가 솔솔 내렸다. 일요일이라 찻길에 차가 많지 않았다. [...] 어디선가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각목을 손에 움켜쥔 대학생이 찻길로 뛰어들었다. “민중생존 압살하는 노태우정권 타도하자!” 그 구호와 함께 찻길로 대학생들이 수북하게 모여들었다. 1분도 안 돼서 몇 천 명이 모였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시위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 말고도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해서 갈수록 많아졌다. 모두 자리에 앉아서 구호를 외쳤다. [...] 그러다 30분쯤 지났을까. 대한극장 위 명동 쪽 오르막길에서 시커먼 장갑차 다섯 대가 옆으로 줄지어 천천히 내려왔다. 일명 ‘지랄탄’ 차다. 최루탄을 한꺼번에 50발 가까이 쏠 수 있다. [...] 지랄탄 차 맞은편에 백골단이 보였다. [...] 그들은 [...] 시위대를 현장에서 잡으러 전속력으로 뛰어왔다. 시위대는 공포에 휩싸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골목으로 도망을 쳤다. 끝까지 찻길에 남아서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은 맥없이 잡혔다. 시위대 머리 위로는 지랄탄이 뿌옇게 내려앉았고 백골단이 휘두르는 곤봉과 방패에 사람들 머리가 깨지고 어깨가 무너지면서 쓰러졌다.


[...] 누군가 길에 나서서 2차 텍으로 가라고 했다. 우리는 삼삼오오 그 길에서 빠져서 청량리역으로 갔다. [...] 동대문역을 지나는데 어느 학생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사람이 죽었어요. 대한극장 앞에서 사위를 하던 학생이 폭력경찰 곤봉과 방패에 맞아서 죽었어요. 성균관대 학생이라고 해요. 지금 백병원으로 모여주세요. 경찰이 시신을 탈취하려 해요. 어서 청년학생들은 명동성당 옆에 있는 백병원으로 가 주세요.” 그 학생은 눈물을 마구 흘리며 소리쳤다. [...] 서둘러 백병원으로 갔다.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경찰도 그만큼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불문과 4학년 여학생 김귀정은 경찰의 폭력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다.


1991년 김귀정 열사 추모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 그날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면 열 사람씩 옆으로 서서 찻길에 나섰는데 맨 앞사람이 창경궁을 지나 광화문 앞까지 갔는데 아직 추모인들은 성균관대 정문을 다 빠져 나오지 않았다.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서 울면서 걸었다. “살인마 노태우를 찢어죽이자” “귀정 누이를 살려내라” 구호도 거칠어지고 피를 토하듯이 외쳤다. 내가 책방 풀무질을 연 1993년 봄에도 추모집회는 이어졌다. [...]


[...] 김귀정 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다. 그냥 먹먹해서 말을 할 수 없다. 나보다 어린 그가 나보다 먼저 갔다. 성균관대학교 안에는 누이 추모비만 쓸쓸히 서있다. 누이 무덤은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있다가 지금은 경기도 이천 민족민주열사들이 있는 새 묘역에 가 계시다.


2017년 2월 26일”


아저씨는 서울에서 집과 가게를 정리하고 난 후 제주도로 이사 가서 다시 책방을 열 계획이라고 했다. 돈이 없어서 금방 가게를 열지 못할 것 같고 내년쯤 열 것 같다며 제주도에 올 일이 있으면 한 번 들르라고 했다.

내가 지하에 있는 가게에서 나올 때 아저씨는 1층까지 배웅을 나오셨다. 나는 아저씨께 말했다. “<풀무질>이 폐업한다는 이야기가 방송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오더라구요. 혹시나 싶어서 가게에 들렀는데 마침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아저씨는 가게 소식이 언론에 많이 나오게 된 데는 뒷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 내가 가게 정리한다고 언론에 먼저 연락한 적은 없어요. 방송국 PD나 아나운서 중에 성대 출신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신문사에서도 일선 기자들은 잘 모르겠는데 윗선에 성대 출신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풀무질> 취재하라고 보낸 거예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 당시에 열심히 살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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