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곤도 마리에 열풍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동아시아 철학을 전공한 학자인 제 눈에는 곤도 마리에 열풍 가운데 매우 익숙한 패턴이 하나 보입니다. 확실하고 평범한 좋은 얘기도 “어딘가 신비로운 동양의 아우라”가 입혀지기만 하면 훨씬 더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는 미국인들의 모습이죠. [...]동아시아 철학의 대중적인 용법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한적인 것에 확장된 의미를 부여하고, 작은 지혜를 세상만사에 적용되는 지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 고대 중국의 군사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눈에 손무는 무력 분쟁의 해결에만 관심이 많았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더 깊이 보면”, 즉 잘 속아 넘어가는 서구의 소비자들에게 팔아보려고 마음을 먹고 보면, 손무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죠. [...][...] 동아시아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저는 “동양의 지혜”라는 딱지가 붙은 문화 현상을 볼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죽어가는 기분을 느낍니다. 대중문화 속 “동양의 신비”를 잔뜩 들이켠 학생들이 매년 더 심오한 동양의 지혜를 찾아 제 수업을 들으러 오죠. 이렇게 기대가 큰 학생들에게 실제로 동양 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김빠지는 일입니다.언젠가 한 미술 박람회의 타투 스티커 부스에서 “Bitch”라는 영어 라벨이 달린 한자 타투 스티커를 본 적이 있습니다. “터프걸”을 지향하는 여성들에게 팔아보려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 한자의 더 정확한 뜻은 “창녀”였죠. “미스터 미야기류”를 통해 동양 철학에 빠지게 된 학생들에게 동양 철학을 가르치는 건 누군가에게 “너 ‘창녀’라는 뜻의 한자를 문신으로 새겼구나”라고 말해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 곤도 마리에의 주요 타겟은 중년층이니 내 수업을 들으러 오는 대학생들은 적어도 “곤도 마리에 타투”를 새기고 있지는 않을 거라는 게 유일한 위안이죠.
서양인 동양철학자가 쓴 글을 읽으니 기분이 묘했다. 10여 년 전, 학부 다니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동양철학 교수 중 대부분은 수업에서 온갖 심오한 동양의 지혜를 뿜어내느라 안간힘을 썼고, 학생들은 동양의 신비를 잔뜩 들이마시며 하하호호 즐거워했다. 특히나, 동양철학의 신비로움에 감탄한 서양인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서 동양철학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며 가슴 벅차했다. 마치 칭찬에 목마른 어린아이가 사소한 칭찬을 받았을 때처럼 좋아했다. 그 서양인이 동양철학을 얼마나 잘 아는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 링크(1): [뉴스페퍼민트] 서양인 동양철학 전공자가 본 곤도 마리에 열풍
( http://newspeppermint.com/2019/02/24/kondo-misuse/ )
* 링크(2): [aeon] Tidying up is not joyful but another misuse of Eastern ideas
( https://aeon.co/ideas/tidying-up-is-not-joyful-but-another-misuse-of-eastern-ideas )
* 링크(3): Amy Olberding
( www.ou.edu/cas/philosophy/people/faculty/amy-olberding )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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