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 제사를 많이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장남이고, 할아버지도 장남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둘째인데 형이 양자로 다른 집 가는 바람에 장남이 되었고, 고조할아버지도 둘째인데 증조할아버지와 같은 이유로 장남이 되어 종가도 아닌데 제사를 많이 지냈다. 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되면 당연히 제사를 많이 지내야 하는 줄 알았다. 나도 장남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우리집 같은 집에서 제사를 많이 지내는 것은 법도에 맞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양반은 세습 귀족이 아니다. 족보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고 하더라도 지금 변변치 않게 살면서 우리 집안이 양반 후손입네 어쩌네 하는 건 무의미하다. 4대 봉사는 당상관 이상이나 하는 것이다. 우리집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제사를 너무 많이 지낸다. 제사의 원래 취지를 고려한다면 제사 주관자가 대면한 사람까지 제사 지내는 게 이치에 맞다. 제사 횟수를 확 줄여야 하는 이유는 이렇듯 확실하다.
옛날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면 조상의 혼이 와서 음식 냄새를 맡는 방식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말 같지도 않는 소리다. 그렇게 따지면 제사 지내다 누가 방귀를 뀌면 조상 유령은 후각으로 똥을 섭취한다는 것인가? 죽은 사람은 음식을 못 먹는다. 제사 음식은 결국 산 사람이 먹는 것인데 만들기는 번거롭고 내 입맛에도 안 맞는다. 제사 음식도 확 줄여야 한다.
제사 횟수를 줄이고 제사 음식도 확 줄이고 절차도 간소하게 할 것이니, 차례 음식을 간소화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는데,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20세기 식 가정의례처럼 근본 없는 것은 다 없애버리고 조선시대 방식대로 술 한 잔, 송편, 과일, 고기 정도만 놓고 차례를 지낼 생각이다. 장남인 내가 그러겠다는 게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당장은 그렇게 못 하겠지만 20년쯤 뒤에는 내 방식대로 차례를 지내게 될 것이다.
* 링크: [조선왕조실톡] 170. 딸도 차례를 지냈다
( 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42598&no=175 )
(201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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