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의 광고 문구대로, 김진명의 『글자 전쟁』은 정말 경이로운 소설이다.
김진명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거의 다 천재다. 소설의 구성 자체가 엉망이라서 주인공이 천재적인 능력으로 난관을 돌파해야만 소설이 끝난다. 『글자 전쟁』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인 ‘태민’은 그의 천재적인 능력으로 CIA의 스페셜 애널리스트가 된 뒤 한국에 돌아와 무기 사업을 하다 동업자의 범죄 사실 때문에 베이징으로 도망간다. 베이징에서 어떤 남자에게 USB를 받는데 그 USB에는 한자를 만든 건 한국인의 조상인 동이족이라는 소설이 들어있었다. 그 소설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 태민은, 돈만 밝히던 냉혈한에서 갑자기 애국자로 변신한다. 애국자가 된 태민은 학술대회에서 한자를 동이족이 만든 글자라고 주장하고 이를 반박하던 중국학자들을 모두 제압한다. 한국에 돌아온 태민은 그의 범죄혐의가 모두 무혐의로 밝혀지고 나라 걱정을 하며 소설이 끝난다.
김진명 소설을 두고 주제가 민족주의적이니 뭐니 하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진짜 문제는 주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개연성도 없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야기의 내용을 떠나서 이야기 전개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에게서 연락을 받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소설가였고(정보기관 요원도 아닌 일개 소설가가 모르는 사람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그 소설가는 한자를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주장을 하고 다니며 중국 정부의 감시대상이 되었는데 굳이 중국에 가서 의문사 한다. 태민은 어떤 여성의 눈빛만 보고 그 여성이 죽은 소설가의 미망인임을 단번에 알아내고(약속을 잡고 만난 게 아니라 눈빛만 보고 알아 본 뒤 대화가 시작된다), 소설 한 편 읽고 문헌 몇 개 찾아보고 나서 석사과정 지도교수에게 “자네는 이미 전문가야!”라는 말을 듣고 학술대회에 초청받아 중국학자들을 제압한다.
예전에 진중권은 김진명의 소설을 두고 만화적인 구성이라고 비판했는데, 사실 웬만한 만화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지는 않는다. 그런 말을 하면 윤태호나 최규석 같은 작가는 화낼 거다(물론 이말년이나 김성모는...).
『글자 전쟁』이라는 소설은 그야말로 황당함의 연속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건 사마천이 동이족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자신의 고환을 포기하는 장면이다. 사마천은 은밀히 한 무제를 만나 황제가 사형을 구형하면 자신이 사형 대신 궁형으로 받고 살아남아 역사서를 쓰겠다고 한다. 그래야 그 역사서가 역사를 왜곡했다는 의심을 받지 않고 후대까지 두고두고 읽힌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사마천이 동이족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은본기>를 쓴 것으로 나온다. 이게 무슨 “여보시오 의사양반 내가 고자라니 대체 무슨 소리요” 하는 소리인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범들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법정에서 구차한 소리나 했는데, 소설 속 사마천은 고작 남의 나라 역사를 왜곡하려고 자신의 고환을 포기한다. 근래에 보기 드문 경이로운 상상력이다.
그러고 보니, 단재 신채호는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을 두고두고 비난했는데 그게 김부식이 죽을 때까지 자신의 고환을 온전히 보존해서였나 싶기도 하다.
(201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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