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동네에서 과외할 때, 고등학교 1학년인 과외 학생은 학교에서 과목마다 독후감 쓰기를 수행평가 과제로 내준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뻑하면 독후감 쓰기를 과제로 내준다는 것이었다. 영어 문장 하나 제대로 못 읽는 애들이 태반인데도 영어 교사는 영문학 서적 독후감을 과제로 내주었고, 수학 문제 하나 제대로 못 푸는 애들이 태반인데도 수학 교사는 수학 관련 도서 독후감을 과제로 내주었다고 한다. 도대체 수학 관련 도서라면 어떤 것을 읽어야 하는가? 『수학의 정석』을 읽고 지난날을 참회하는 글을 써야 하나?
나도 중・고등학생 때 뻑 하면 감상문을 써냈었다. 중학교 때 쓴 음악 감상문과 고등학교 때 쓴 연주회 감상문은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다.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음악을 틀어놓고는 수행평가 과제로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 중학생들이 음악 평론가 강헌도 아닌데 어떻게 음악을 듣고 감상문을 쓸 수 있을까? 음악 선생님은 감상문을 정상적으로 쓸 수 있나? 어쨌든 내신에 들어가니까 감상문을 쓰기는 썼다. 하도 쓸 말이 없으니까 “아, 마귀가 쫓아오는 것 같다” 이런 글을 쓴 애도 있었다. 그때 들었던 곡이 쇼팽의 <흑건>인가 그랬다.
고등학교 때는 연주회 감상문을 쓰고 뒷면에 연주회 표를 붙여서 내는 과제가 있었다. 나는 예술의 전당에서 한 <피아노 콘서트>를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공연에서 연주한 곡은 죄다 별로였다. 내가 음악은 전혀 모르지만 ‘모차르트, 바하가 쓴 곡 중에 왜 이렇게 별로인 곡만 연주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그대로 감상문에 쓰고 최하 점수를 받았다. 최하 점수를 받으니 과제를 내지 않는 사람과 점수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냥 내지 말 걸 그랬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봐도, 그런 과제는 학생들만 수고스럽게 하고 시간만 뺏는 것이었다. 나는 과외 학생한테 “어차피 그런 이상한 과제를 곧이곧대로 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료를 적당히 편집해서 내라. 그 시간에 수학 문제 푸는 게 먹고 사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다른 학생 같으면 어떻게 편집할지 방법을 물었을 텐데 그 학생은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목사님 아들이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20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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