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눈이 왔다. 아직 11월인데 눈이 꽤 많이 온다 싶었는데 너무 많이 내려서 점심 때 음식을 배달시킬 수 없었다. 저널클럽 회식을 점심에 하기로 했는데 음식 배달이 안 되니 교내에서 먹기로 했다. 식당마다 재료가 소진되어 주문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눈이 많이 와서 음식 재료를 납품받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세 번째로 들른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저녁을 먹도록 눈이 그치지 않았다. 이후에도 눈이 계속 왔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문자가 왔다. 그 다음 날 하는 수업이나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강의 나가는 학교에서도 문자가 왔다. 교칙에 폭설로 인한 휴강에 관련된 규정이 없으니 교수자 재량껏 휴강 여부를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교칙에 폭설 관련 규정이 있든 없든 그 다음 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숙사에 갔다. 눈이 와서 풍경이 예쁘게 변해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학교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날씨도 춥고 해야 할 일도 있어서 기숙사 근처에서 사진 몇 장 찍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목요일 아침이 되었다. 밤새 내렸는지 눈이 어마어마하게 쌓였는데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11월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것을 본 적도 없다. 117년 만에 11월 적설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살면서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인 것을 못 본 것 같다. 기숙사 근처를 둘러보았다. 죄다 눈이었다.
도로 쪽으로 나가보았는데 마을버스도 보이지 않고 셔틀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가서 눈을 치워야 하는데 집에 가기 어려워 보였다. 기숙사에서 지하철역으로 걸어 내려간다고 한들 어차피 버스로 갈아타야 집에 갈 수 있는데 눈 때문에 길이 한참 막힐 것이었다. 이렇게 된 김에 눈 구경이나 하기로 하고 학교를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계속 걷다 보니 건축학과에서 지었다고 하는 한옥이 나왔다. 한옥 근처에 폭포로 가는 길이 있다. 이런 날씨에는 폭포가 어떻게 보이나 궁금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데 발목보다 높이 눈이 쌓여있었다. 자세히 보면 아예 발자국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발자국 위로 눈이 한참이나 쌓인 흔적이 있었다. 분명히 그 전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폭포에 온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사람이 다녀간 뒤 처음 온 사람이 나였을 것이다. 그렇게 폭포로 가기는 했는데 사방이 죄다 눈이어서 그렇게 대단한 풍경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라 폭포 물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폭포에서 빠져나와 시계 방향으로 학교를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셔틀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짐을 챙겨 집에 가려고 셔틀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아침에 기숙사에서 나올 때 멀쩡했던 나무가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는 산책로 쪽으로 쓰려져 있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집에도 눈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었다. 도로에서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내리막이라 어머니는 차를 다른 곳에 세워두고 조심해서 걸어오셨다고 한다. 눈이 양이 어마어마한 데다 물기까지 머금고 있어서 어머니가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설작업 때 쓰는 밀대로도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나는 삽으로 눈을 퍼낸 뒤 남은 눈을 밀대로 밀어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집에 오면서 걱정했던 것이 지붕 끝에 달린 챙이었다. 챙은 지붕에서 빗물을 모아 한쪽으로 흘러내리게 하는 것인데, 눈이 많이 오면 눈의 무게 때문에 휠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눈이 녹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밀고 내려와서 지붕에 달린 챙이 휘어진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이미 챙이 휘어져 있었다. 여기서 눈이 살짝 녹아 위에 쌓는 눈이 아래로 흘러내리면 챙이 완전히 망가질 것이었다. 응급조치로 챙에 있는 눈을 밀대로 모두 퍼냈다. 챙에서 눈을 퍼내자 아직 탄성이 망하기 전이어서 원래 상태 비슷하게 돌아왔다.
문제는 창고 지붕에 달린 챙이었다. 창고 지붕의 높이는 4미터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지 않는 이상 조치를 취하기 힘들었다. 토요일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일요일 점심 때쯤 되니까 그 전날보다 훨씬 많이 휘어있었다. 아래에 있는 눈은 그대로 쌓여있고 위에서 눈이 녹으며 밀고 내려오니 챙 쪽으로 하중이 쏠린 것이었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창고 지붕에 쌓인 눈도 치웠다. 지붕 위로는 올라갈 수 없어서 지붕 옆에 달라붙어서 삽으로 챙과 지붕에 쌓인 눈을 퍼냈다. 그렇게 눈을 퍼내니 창고 지붕의 챙도 원래 상태 비슷하게 돌아왔다.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눈을 치우는 데만 3-4일이 걸렸다.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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