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톤, 『파이드로스』, 김주일 옮김 (아카넷, 2020). ]
275d-275e
이집트의 ‘나우크라티스’라는 도시의 ‘테우트’라는 신이 살았음.
테우트는 수와 계산, 기하학과 천문학 등 인간에게 유용한 것들을 발명함.
테우트가 발명한 것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문자였음.
그 당시 이집트를 다스리던 왕은 타모스.
테우트는 타모스에게 가서 자신의 발명품들을 보이면서 그것들을 이집트에 널리 보급해 달라고 부탁함.
테우트가 하나씩 발명품을 소개할 때마다 타모스는 그것이 무엇에 쓰이는지 물었음.
테우트는 문자가 이집트인들을 더 지혜롭게 하고,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으며, 기억과 지혜의 영약이라고 말함.
타모스는 이렇게 대답함.
“당신은 [...] 문자가 가지고 올 결과와는 반대되는 효과를 가지고 나를 설득하려 합니다. 당신은 문자가 기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문자는 그것을 배우는 사람의 마음속에 망각이 자라게 할 뿐입니다. 그것을 배우면, 문자에만 의존하여 기억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자신의 내적 능력에 의하여 기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낯선 부호에 의해서만 기억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발명한 것은 기억의 약이 아니라 회상의 약입니다. 또 당신은 그 발명품이 지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배우는 사람은 지혜의 실재가 아닌 외양을 가지게 될 뿐입니다. 그 발명품 때문에, 사람들은 배움이 없이도 여러 가지를 주워듣게 되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므로, 그들을 가장 곤란한 상대가 될 것입니다.”
테우트와 타모스의 이야기를 하고 나서,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함.
“그러므로, 누군가가 어떤 기술을 글로 써서 남기거나, 아니면 글로 쓴 것을 전해 받으면서, 글에서 무엇인가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바보일세.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람은 타모스의 예언도 아랑곳하지 않는 셈이 되네. [...]
글의 위험이라는 것은, 글이 초상화와 비슷하다는 점일세. 초상화에 그려진 인물은 얼른 보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질문을 해 보면 침묵을 지키네. 글로 써 놓은 것도 이와 마찬가지일세. 사람들은 글이 마치 어떠한 지혜를 말하는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내용을 좀 더 이해해 보려고 질문을 해 보면 글은 언제나 똑같은 한 가지 대답밖에 할 줄 모른다네.
그뿐만이 아닐세. 글은 한 번 쓰이면,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건 그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굴러다니며, 누구에게 말해야 하며 누구에게 말하지 말아야 할지를 분간하지도 못하네. 또한 부당한 오해를 받을 때, 글은 혼자서 방어도 못하고, 언제나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야 하네.”
(20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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