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때는 도랑에 쌓인 흙을 퍼냈다. 재작년 말에는 도랑 아래쪽에 쌓인 모래흙 위주로 퍼냈다면, 이번에는 도랑 위쪽에 쌓인 진흙 위주로 퍼냈다. 도랑 위쪽은 전반적으로 진흙이 죽처럼 되어 있었다. 내가 밭을 손대기 전까지 배수로가 정비되지 않아서 밭의 일부에 빗물에 쓸려 파이거나 무너져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재작년 말에는 도랑 아래쪽 모래흙 퍼내느라 힘들어서 도랑 위쪽 진흙은 제대로 퍼내지 못하고 물꼬만 트는 식으로 처리했는데, 올해는 아예 작정하고 진흙을 다 퍼냈다. 물풀 뿌리 때문에 삽이 진흙에 들어가지 않아서 낫으로 뿌리를 잘라가며 진흙을 퍼내어 옆에 쌓았다. 그렇게 하니 진흙에서 물이 빠지면서 흙이 말랐다. 흙은 말라야 쌓인다. 1년에 한 번씩 이런 식으로 흙을 퍼내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무너진 곳은 나무를 심어도 될 정도로 복구될 것이다.
도랑에서 흙을 퍼내면서 근처에 있던 억새 줄기를 모두 낫으로 베었다. 다른 나무가 안 자라면 억새라도 잘 자라야 흙이 안 무너지는데, 죽은 억새가 계속 쌓이면 새로 억새가 자라는 것을 방해하여 흙이 무너지게 된다. 이번에 손대는 김에 억새 줄기를 모두 제거했다. 어머니는 도랑 근처 억새 줄기를 모두 잘라낸 것을 시집와서 처음 본다고 하셨다.
내가 일하는 동안 연동이는 내 주변에 와서 놀았다. 원래 같으면 연동이가 내 다리에 붙어 있으려고 했을 텐데, 내가 진흙탕에서 일하고 있으니 연동이는 억새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졸았다. 한참 조용히 있다가 깨어나서는 내가 있는 진흙탕에 들어오려고 도랑 쪽으로 내려오다가 진흙에 앞발 한 번 대보고는 이게 아니다 싶었는지 원래 있던 곳으로 곧바로 올라갔다.
(202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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