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학부 강의를 해본 적이 없다. 교수 임용에 학부 강의 경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았지만, 어차피 학위 받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어서 논문이 급하지 학부 강의 경력이 급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지도교수님 방침도 졸업이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웬만하면 학부 강의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쪽이다.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학부 수업을 처음 하면 강의 준비 등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에 학위논문 작업이 웬만큼 진척되지 않는 경우 학부 강의를 추천하지 않는다. 수업 자료 제작, 과제나 시험 채점 등에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생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학부 강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도교수님도 이를 말리지는 않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학부 강의가 아니더라도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학부 강의를 고집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부 강의를 하기는 해야 할 상황이 된 것 같다. 졸업이 가까워서는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에 학부 강의 경력이 없어서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를 놓친 적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위해서라도 학부 강의를 해야 할 상황이다.
작년에 서울시교육청에서 하는 고등학생 대상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올해는 그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 서울시교육청의 연락을 받았다. 제출 서류 중 하나를 빼먹은 것 같으니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학부 강의를 한 적이 없어서 제출할 자료가 없다고 답했다. 교육청에서는 작년에 서울시교육청에서 해당 사업을 할 때는 시범적으로 하는 거라서 대학원 재학증명서나 수료증명서나 졸업장만 있으면 되었는데, 올해는 시 의회 등의 감사 때문에 학부에서 강의했다는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학사는 학부 강의 경력이 없더라도 다음 학기에 강의할 예정이라는 증명서도 유효하니 내년 사업이 열리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선생님들이 학부 수업 처음 할 때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강의할 때는 선배들의 수업 자료를 여러 개 받아서 참고하고 고치면서 수업 자료를 만드는데, 어차피 나중에는 자기 스타일대로 만들게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시간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문학 쪽에도 표준 교재 같은 것이 있고 그에 맞게 만든 수업 자료도 있다면 학위를 못 받거나 학위는 받았지만 논문 실적이 모자라는 강사들이 수업에 시간을 덜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경제학 교재 중에는 출판사에서 강의 자료까지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해당 교재가 그 분야의 표준 교재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이 팔리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철학 분야 교재는 판매량 자체가 적기 때문에 표준 교재가 생기더라도 출판사에서 수업 자료까지 만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20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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