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극 중에 광개토왕을 다룬 작품은 있어도 장수왕을 다룬 작품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수왕이 등장하는 작품이라면 승려 도림을 백제에 첩자로 보내 개로왕이 실정하게 하는 부분도 있어야 할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하는 것을 이용하여 도림이 왕에게 접근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게 만들어 백제의 국력을 쇠하게 만들었다고 나온다. 그런데 왕이 바둑을 좋아하고 도림이 바둑을 잘 둔다고 해도, 적국에서 죄를 짓고 도망쳐온 사람이 왕과 곧바로 친해지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을 극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개로왕이 평복을 하고 저잣거리에 있는 기원에서 가끔씩 바둑을 둔다고 설정하자. 어느 날 기원에 갔더니 어떤 스님이 바둑을 두고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세상에 무슨 스님이 바둑을 저렇게 잘 두냐면서.
- 개로왕: “백제 사람 아니죠? 고구려 사람 같은데?”
- 도림: “네, 어쩌다 죄를 지어서.”
- 개로왕: “어쩌다 죄를 지었는데요?
- 도림: “순진한 귀족 등도 치고, 백성들 울리기도 하고.”
- 개로왕: “벌이가 좋았나 모르겠네요?
- 도림: “별로였어요. 저는 좋은 스님이거든요.”
- 개로왕: “바둑은 어디서 배웠어요?
- 도림: “주지 스님한테서요”
- 개로왕: “모든 대답이 너무 의외라…….”
[...]
- 도림: “판당 20전이던데.”
- 개로왕: “아…….”
- 도림: “즐거웠습니다.”
- 개로왕: “판당 50전. 한 판 더 어때요?”
- 도림: “그건 노름인데?”
- 개로왕: “그런가요?”
[도림의 독백] 바둑은 침묵 속에서 욕망을 드러내고 매혹하고 매혹당하며 서로를 발가벗겨.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그땐 그저 바둑인 거지.
- 도림: “좋죠, 노름.”
(20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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