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1

고등학교 교과 융합형 과제에서 해볼만한 것?



고등학교에서 교과 융합형 과제나 토론 같은 것을 한다고 들었다. 예를 들어, 한 주를 ‘독도 주간’으로 정해서, 지구과학에서 보는 독도의 지질, 사회과목에서 보는 국제법상의 독도, 한국사에서 보는 독도 같은 것을 진행한다고 한다. 교사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은 알겠으나, 사실 별로 흥미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학생들한테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학생 입장에서도 그렇게 흥미로워할 것 같지는 않다. 기존 교과를 가지고 창의네 융합이네 해봐야, 기존 자료를 중위권 고등학생 수준에 맞춘 것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탐구까지는 아니더라도 맛보기 정도로 교과 이외의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면 어떨까? 한문 시간에 ‘우공이산’이라는 사자성어를 배우고 해당 성어의 유래가 되는 『열자』 원문을 읽고 해석했다고 하자. 그 다음에 할 것은 우공의 행동이 본받을 만한 것인지 평가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인지 토론할 수도 있고, 우공의 정신나간 발상을 왜 우공의 가족들은 순순히 따랐을지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가령, 우공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이 생계를 팽개치고 산을 옮기려고 한 것을 보면 우공이 재력가일 수도 있다든지 등등.

친구들과 한가롭게 대화하고, 웃고 떠들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도록 한 다음에는 각 분야 전문가나 준-전문가를 모셔와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도 있다. 경제학과 쪽 외부 강사를 모셔 와서 비용-편익 분석에 대해 특강하고, 지리학과 쪽 강사를 모셔 와서 태항산과 왕옥산의 지리에 대한 강의를 한 후 해당 산을 없앴을 때 예상되는 변화들에 대해 토론하고, 지질학과 쪽 강사를 모셔 와서 중국 태항산과 왕옥산의 지질에 대해 특강을 하고, 토목공학 쪽 강사를 모셔 와서 산을 어떻게 뚫는지 알아보고, 산의 질량을 어떻게 측정할지를 고민해 보고, 관련 전문가를 모셔 와서 페르미 추정 같은 것은 어떻게 하는지 시범을 보고, 당시 기술로 가능한 하루 작업량을 추정해 본다고 해보자. 이런 식으로 하면 우공이산 하나 가지고도 1년이 후딱 갈 것이며, 학생들이 자기가 가고 싶은 학과에 진학할 때 동아리에서 한 우공이산 프로젝트를 가지고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자면, 예산도 예산이지만 어디서 누구를 섭외해야 할지부터 난관에 부딪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일반 고등학교에서 할 수 있는 독서 토론이라는 것은 기계공학과에 진학할 학생이 『어린 왕자』를 읽고 진로 탐색 및 진학에 도움을 받았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감상문을 써내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기계공학과에 진학할 학생에게 『어린 왕자』가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자기소개서에 “4학년 때 <차량 동역학>을 배우게 된다면 나는 2학년 때 <동역학>을 배울 때부터 설레기 시작할 것이다”라고 쓰려나?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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