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2

안창남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든다면

주말에 학부 선후배들과 영종도에 다녀왔다. 영종도에는 <영종역사관>이라는 박물관이 있는데, 여기서 ‘공중용사 안창남’이라는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전시회는 안창남이 어떤 인물이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뿐만 아니라 당시 안창남에 대하여 식민지 조선에서는 어떤 반향이 있었는지 등을 다룬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는 안창남을 주제로 한 민요가 유행했고 온갖 광고에 안창남이 모델로 출연했으며, 일본에서도 안창남과 관련된 기념엽서가 나올 정도였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내려다 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라는 민요 가사를 읽다가 무언가가 떠올랐다. 안창남? 엄복동?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후속작으로 <비행기왕 안창남>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에 3.1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자전차왕 엄복동>을 개봉했으니 2025년에 광복 80주년 기념으로 <비행기왕 안창남>을 개봉하면 될 것이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엄복동이 자전거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이 모두 허구이지만, <비행기왕 안창남>은 실제 일대기를 가지고 신파와 국뽕을 충족시킬 수 있다. 우선, 안창남은 거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금전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어머니가 일찍 죽고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맞아들였는데, 아버지가 죽자 새어머니가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차지했기 때문에 안창남은 빈털터리가 되었던 것이다. 안창남은 새어머니가 집을 판 돈(현재 가치로 약 3억 원)을 들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고, 조선에 돌아와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다가, 중국으로 넘어가 항일독립운동을 하다 훈련 중 사고로 죽었다. 안창남의 일생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어설프게 이야기를 만들 필요 없이 각색만 잘 하면 된다.

정말로 <비행기왕 안창남>을 영화로 만든다면, 주인공은 정지훈(비)이 하면 좋을 것이다. 정지훈은 영화 <R2B>에서 조종사 역을 한 적이 있으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1920년대 인물인 엄복동 역을 한 적도 있다. 영화에서 1920년대 조선인 조종사 역을 해야 한다면 누가 해야 하겠는가? 정지훈밖에 없다.

안창남의 일생은 극적이기 때문에 무리한 각색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극적인 긴장감을 위해서 몇 가지 장치는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마치 엄복동이 자전거를 훔치듯 안창남이 격납고에 있는 비행기를 훔쳐서 중국으로 도망치는 장면을 넣는 것이다.(만일 <자전차왕 엄복동>에 엄복동이 자전거를 훔치는 장면이 포함되었다면 관객수는 최소한 두세 배는 늘었을 것이다.) 안창남이 비행기를 훔칠 때 이에 협조하는 인물 역을 배우 이범수가 맡으면 더 실감날 것이다.

대충 다음과 같은 장면을 떠올려보자. 정지훈과 이범수가 격납고에서 비행기를 훔쳐서 활주로까지 끌고 오는 데까지는 성공한다. 두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쉴 때,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일본어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혼자 가기를 주저하는 정지훈에게 이범수가 소리친다. “창남아, 지금이야!” 비행기는 부-우-아앙- 하는 소리를 내며 이륙하고 이범수는 일본군의 총을 맞고 피범벅이 되어 쓰러진다.

그런데 <비행기왕 안창남>을 영화로 만들 투자자가 있을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가령, 기업에서 영화 만든다고 하고 150억 원쯤 투자해서 실제로는 50억 원쯤 쓰고 나머지 돈을 빼돌려서 개인 비자금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해보자. 영화를 제작할 충분한 유인이 될 것이다.

(202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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