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형 서점에 갔다. 대형 서점에 갈 때마다 쓸데없는 책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대형 서점은 사람들이 찾아서 읽는 책은 구석으로 배치하고 사람들이 아직 정체를 모르는 새 책은 잘 보이는 곳에 놓는다. 그러한 새 책 중 상당수는 세상에 나올 필요가 없는 책이다.
요즈음 출판계 유행은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잡소리 해놓은 것을 엮어서 책으로 내는 것이라고 한다. 신문 기사의 내용이 맞기는 맞는지, 내가 간 서점에서는 무슨 무슨 감성 에세이 류의 책 수십 종을 입구에 진열해놓았다. 종류만 많았지 하나 같이 글이 변변치 않았다. 그런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필명을 썼는데 자기가 봐도 글이 이상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잘 쓰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쓴 책이 출판시장에 나온다는 것은 상당히 우려할만한 일이다. 이것은 마치, 노래 교실에서 취미로 노래를 부르는 아주머니들이 녹음한 음반이 음반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과 비슷하다. 출판 시장에서 정상적인 상품이 유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출판사들의 노력이 눈물겹기는 하다. 그러나 도태되어야 할 출판사가 도태되지 않으면 시장 상황이 더 나빠진다. 도태되어야 할 출판사가 살아남으면 멀쩡한 출판사의 몫이 줄어들고, 시장에 진입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시장에 진입할 용기와 유인을 얻게 된다.
한국 언론은 한국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가끔씩 혼을 낸다. 그런데 언론에서 추천하는 책은 죄다 읽으나마나 한 책이다. 그런 책을 읽는 것이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개나 소나 쓰는 시시한 소설책을 읽는 것이 넷플릭스로 외국 드라마 보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행위인가. 바람을 잡아도 꼭 유치하게 잡는다. 누구는 책을 몇 권 읽는다더라, 누구네 집에는 책이 몇 권이라더라 하고, 꼭 양으로 승부를 보려고 한다. 문제는, 방송에서 이렇게 얄팍하게 바람을 잡아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기에 속아 넘어가서 읽을 필요도 없는 책을 산다는 점이다.
<1년에 책 몇 권 읽기> 같은 것을 목표로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좋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 아니라 정보량이 적어서 읽기 쉬운 책을 많이 읽게 된다. 개인들은 인생을 허비하게 되고 도태되어야 할 출판사들의 생명이 연장되어 출판 시장이 망가진다. 필요한 것은 <책 우라지게 많이 읽기> 운동 같은 것이 아니라 <좋은 책 가끔씩 조금만 읽기> 운동이다.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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