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2

경제신문 논설위원이 쓴 경제학 교양서적을 읽고



아르바이트 때문에 청소년용 경제학 교양서적을 읽을 일이 있었다. 경제학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본다는, 제목부터 수상한 책인데, 역시나 내용도 좋지 않았고 구성도 엉성했다. 경제신문 논설위원이 쓴 책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 책은 1장부터 이상하다. 저자는 『맨큐의 경제학』에 나오는 10대 기본 원리를 소개한 뒤 우리 관점에서 쉽게 와 닿지 않거나 잘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면서 각자 ‘나만의 경제원리’를 찾아보자고 한다. 맨큐가 제시한 10대 원리가 어떤 점에서 와 닿지 않는지 설명한 다음 자기만의 경제 원리를 찾든 말든 하는 것이 옳을 텐데, 굳이 ‘나만의 경제원리’를 찾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책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 『맨큐의 경제학』을 베껴야 하겠는데, 대놓고 베끼면 문제가 생기니까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제시한 10대 원리 중 네 번째 원리는 “무료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것이다.(20-21쪽) 맨큐가 제시한 경제학의 기본 원리 중 첫 번째는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를 인용하여 공짜 점심은 없다는 서양 속담과 같은 의미라고 설명한다. 역시나 ‘나만의 경제원리’ 같은 것은 굳이 찾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영 엉뚱한 소리를 한다. 휴대전화 요금에 무료 통화 몇 분을 제시하는 것이나 경품 행사 등에서 공짜라고 제시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맨큐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는 것은 기회비용을 말하는 것이며 의사 결정에서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충되는 다른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저자가 제시한 사례는 상품 가격에 반영되지만 공짜로 위장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2장에서는 비교 우위를 설명하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를 언급한다. 미다스의 손에 닿는 것은 전부 황금이 되어서 굶어 죽었다는데, 저자는 미다스의 손이 애덤 스미스가 말한 절대 우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리카도의 비교 우위 소개를 하다가 FTA를 꺼낸다. FTA를 체결할 때마다 거론되는 농업이 비교열위 산업에 해당되는데 “1차 산업인 농업을 2차, 3차 산업화 하는 것을 6차 산업이라고 부른다”면서 1+2+3이나 1×2×3이나 모두 6이 된다는 데서 나온 개념이라고 한다.(47-52쪽)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절대 우위와 비교 우위를 설명하는데 왜 미다스의 손이 나오는 것이며, 6차 산업은 왜 나오는가?

꼼꼼히 읽을 만한 책이 아니었지만 아르바이트 때문에 죽 훑어가면서 끝까지 다 보았는데, 책에 이상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분명히 저자 소개에는 “A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B대학교 경제대학원을 나와 경제신문 기자로 26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책만 놓고 보면 <경제학 원론>도 안 들은 것 같았다. 경제학과 대학원을 나왔다는 사람이 어떻게 책을 이 모양으로 쓸 수 있나 싶어서 RISS에서 석사 논문을 찾아보았다. 박사는 당연히 아닐 거고 어쩌다 석사 학위는 받았나보다 하고 석사 논문을 찾았는데, 학위 논문이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석사도 아니었던 것이다. 석사 수료면 석사 수료라고 적어야지 “B대학교 경제대학원을 나와”라고 적으면 대학원을 졸업한 줄 알 것 아닌가? 대학원을 때려치우고 나온 건지 쫓겨나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졸업한 것도 아니면서 “대학원을 나와”라고 쓰면 대학원에서 학위 받은 것으로 오해하라는 것밖에 안 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저자가 책을 한 권만 쓴 것이 아니라 여러 권 썼으며, 심지어 경제학 강연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맨큐의 경제학』도 제대로 소화했는지 의심스러운 사람이 행동경제학을 소개하는 책을 쓰고 그 책을 가지고 강연까지 한다. 강연자 약력에는 경제대학원을 나왔고 경제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경제학 서적의 저자라는 것이 항상 나온다. 최소한의 상도덕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대학원 다니다 망한 사람이 개떡 같은 책을 쓰고 청소년 대상으로 약을 팔고 다닌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겠다. 그런데 해당 저자는 <◯◯경제신문>의 논설위원이다. 경제학에 대해 제대로 아는지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최소한의 상도덕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경제신문에서 최저임금이 어떠네 법인세가 어떠네 하며 사설을 쓴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예전에 이준구 선생님이 강연 중에 “내가 모르는 것을 신문논설위원들이 어떻게 압니까”라고 하셨을 때는 ‘아, 저런 게 전문가의 위엄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경제신문 논설위원이 쓴 3류 교양서적을 읽고 나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201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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