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0

[과학사] Ashworth Jr. (1990), Ch 7 “Natural History and the Emblematic World View” 요약 정리 (미완성)



[ William B. Ashworth Jr. (1990), Ch 7 “Natural History and the Emblematic World View”, in D.C. Lindberg and R.S. Westman (eds.)(1990), Reappraisals of the scientific revolu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304-332. ]

애쉬워스는 자연사의 성격에 대한 가정에 심각한 결함이 있으며 이러한 결함 때문에 르네상스 후기와 17세기 초의 중대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함.

자연사에 대한 시각이 왜곡된 것은 역사가들이 올바른 질문을 던지지 못했기 때문.

에쉬워스가 생각한 올바른 질문

“왜 르네상스 학자들은 자연 세계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출판했는가?”

“그들의 모음집에는 어떠한 내용이 들어갔으며, 왜 들어갔는가?”

“출판은 어떠한 대상을 상정하고 이루어졌으며, 책에 담긴 정보는 어떠한 용도로 사용될 것으로 기대했는가?”

“자연에 대한 연구는 더 큰 문화적 시도의 일부였는가?”

“이러한 노력은 후원자들로부터 후원을 받았는가, 받았다면 왜 받았는가?” 등

애쉬워스는 동물학 분야에 한정하여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함.

애쉬워스는 당시 맥락에서 자연사를 바라보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고 함.

이 세상에서는 동물이 은유, 부호, 상징의 복잡한 언어의 한 면일 뿐.

애쉬워스는 이러한 세계관을 “상징적 세계관”이라고 부름

이러한 세계관이 1550년부터 1650년 사이에 큰 변화를 겪고 존스턴의 시대에 와서는 완전히 소멸됨.

상징적 세계관의 종말이 과학 혁명이라고 부르는 발전의 결정적인 부분.

이를 보이기 위해 게스너와 알드로반디를 새롭게 봄.

애쉬워스는 게스너의 자연사 저작에서 공작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할 때 공작에 대한 사실적 진술이나 해부학적 묘사, 또는 분류 체계 내 공작의 위치 등이 아니라 공작을 역사, 신화, 어원, 그 밖의 동물의 왕국, 그리고 우주와 이어주는 관계망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함.

푸코의 말을 빌자면 이러한 유사성을 찾는 행위가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의 에피스테메(episteme)이며, 게스너가 오늘날의 자연사학자들과는 다른 의도로 자연사 책을 썼다는 것.

이러한 방식은 알드로반디에게 이어졌고, 존스턴에게 와서 그 맥이 끊겼음.

존스턴은 과학사학계에서 알드로반디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으나, 푸코는 존스턴에게서 이전 르네상스 학자들과는 다른 단절을 발견했다고 함.

애쉬워스는 존스턴의 백과사전에서는 이전과는 다르게 동물이 더 이상 기호나 상징이 아니며, 동물과 연관된 수많은 신화나 역사 등이 떨어져 나가고 동물 그 자체가 벌거벗은 채로 등장한다는 제이콥의 말을 인용함.

이러한 변화는 신세계의 동물들에 대한 자연사적 연구가 소개되면서 일어남.

신세계의 동물들은 기존 동물들이나 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맥락과 유사성이 없었던 것.

존스턴이 백과사전을 작성할 때 게스너나 알드로반디의 책과 함께 신세계에 대한 니렘버그와 마크래프의 책을 모두 참고함. 전혀 다른 두 가지 스타일의 서술과 마주하게 됨.

유사성의 옷을 입은 구세계의 동물들에 대한 서술과 연관성이 전혀 없는 신세계의 동물들에 대한 서술을 보며, 존스턴은 일관성 때문인지 개인적 취향 때문인지 최초로 구세계의 동물들을 관찰자의 눈앞에 벌거벗긴 채로 내놓음.

이러한 연구 태도는 사실 고고학이나 역사학에 이미 있었음.

애쉬워스는 연구 대상에 대한 특별한 정보 없이 대상의 특징을 살피는 것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고고학의 연구 전통이 상징적 세계관을 끝내고 과학혁명을 촉진시킨 요소의 하나라고 주장함.

애쉬워스는 상징적 세계관의 종말을 이끈 다른 요소로 브라운의 『저속한 실수』라고도 불리는 저서의 등장을 꼽음.

브라운은 알드로반디의 책에 나온 내용들의 진위 여부를 실험을 통해 밝히고자 함.

그의 실험은 알드로반디의 자연사 서술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밝혔고, 이러한 저작의 등장이 상징적 세계관의 종말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공작의 예: 공작이 머리를 들고 있는 이유는 자기 발을 부끄러워해서가 아니라 꼬리의 무게를 지탱하려는 역학적 문제 때문.

상징적 세계관의 종말을 이끈 세 번째 요소 - 베이컨주의의 등장

베이컨은 “세상은 신의 이미지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며 신의 권능을 자연사를 통해 드러내는 상징적 세계관을 부정했다고 함.

애쉬워스는 베이컨이 단어와 의미 사이의 관계가 임의적이며, 말에 숨겨진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이 자연에 숨겨진 의미가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상징적 세계관이 소멸하게 되었다고 주장함.

베이컨의 영향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언급은 베이컨의 영향이 앞의 다른 요인들보다 작았음을 강조하는 것. 

이는 베이컨에게 큰 무게를 지운 이전의 서술들과 차별화되는 지점.

애쉬워스는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은 수학적 과학 혁명과는 별개로 자연사에서는 과학 혁명기의 변화가 있었음을 주장함.

이를 통해 자연사의 역사적 위치를 재평가하고 이른바 과학 혁명기의 변화를 획일적이고 단선적으로 보지 않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함.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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