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1

중고서점 입지조건 분석

     

중고서점을 몇 군데 다니면서 보니, 잘 되는 중고서점과 잘 안 되는 중고서점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위치인 것 같다. 위치는 접근성과 직결된다. 대중교통 수단이나 도로가 얼마나 잘 정비되어 있느냐가 아니라 도보로 얼마나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마음먹고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 볼 일 보러 가다가 잠깐 들러서 책을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다른 용무 없이 책만 보러 갈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먹고 시간 내서 책 보러 가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접근성 좋은 중고서점의 대표적인 사례는 낙성대 역 근처에 있는 <흙서점>이다. <흙서점>은 서울대 후문으로 가는 마을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있다. 학교에서 나오는 버스에서 내려서 잠깐 서점에 들를 수도 있고 버스를 기다리다 서점에 잠깐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위치가 좋아서 항상 사람이 붐빈다.
  
내가 아는 서점 중에 흙서점과 대조되는 사례가 두 군데 있다. 한 곳은 대학동에 있는 어떤 서점이다. 외진 곳에 있어서 다른 동네에 사는 사람이 책을 사러 굳이 거기까지 가려면 번거롭다. 더 안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중고서점도 있다. 원래 서울 북부에서 크게 하던 중고서점인데, 매출이 감소하자 경기 남부의 어느 외진 곳으로 가게를 옮긴 것이다. 서울보다 땅값도 싸니 대형 창고도 짓고 커피숍도 차렸다. 그 가게의 사장님은 가게 이전을 일종의 돌파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가게를 옮기면서 가게 사장님은 어느 신문사와 인터뷰도 했는데,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임대료도 저렴하고 교통이 편리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교통의 편리함은 도보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도로가 잘 뚫렸다는 것이다. 중고 책을 사러 국도나 고속도로를 타고 중고서점에 들르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결국, 몇 억원을 투자했지만 경영상의 위기를 맞게 되어 더 외진 곳으로 가게를 옮기게 되었다.
  
위치는 그 가게에 어떤 사람들이 오느냐와도 직결된다. <흙서점>에는 대학생이 많이 온다. 동네 주민이 30년마다 한 세트가 바뀔 때 대학생은 4년마다 한 세트가 바뀐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 대학동 고시촌은 대학생, 고시생, 동네 주민으로 구성된다. 대학생은 아침에 나가서 저녁 때 셔틀버스 타고 숙소로 자러 오니 중고책을 살 가능성이 낮다. 게다가 근처에 흙서점이 있으니 굳이 고시촌에서 중고책을 살 이유가 없다. 고시생은 고시 준비하느라 바빠서 다른 책을 읽을 여가가 없다. 그런 동네에서 고시 교재를 파는 중고서점은 생존할 가능성이 있지만 일반 교양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은 살아남기 어렵다. 동네 주민들은 책을 잘 안 사고, 사봤자 얼마 안 산다. 경기 남부에 있는 서점은 주변이 논밭이고 주민도 대부분 노인이다. 멀리 주택단지가 있지만 어린이 전집을 싸게 하려는 몇몇 학부모가 올 뿐이다.
  
일단 사람이 와야 책이 팔리고 책이 팔려야 새 책을 들여놓는다. 새 책이 없으면 사람이 오지 않는다. 흙서점 같은 경우는 서점에서 진열된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중고 책이다. 고시촌에 있는 서점이나 경기 남부에 있는 서점은 대부분이 옛날 책이라서 살만한 것이 매우 적다. 오래되어서 안 팔리는 헌책은 고물상에 폐지로 팔거나 다른 중고서점에 판다고 한다. 이것도 웬만큼 장사가 될 때 이야기다. 일부 오래된 책이 안 팔릴 때나 폐지로 팔지 전부 안 팔리면 손을 쓸 수가 없다.
  
책이 안 팔려서 새로 중고 책을 들여놓는 데 문제가 생기면 중고 책을 납품하는 업자와도 관계가 끊어진다. 흙서점에서 보니 하루에도 여러 번씩 중고 책을 납품하는 업자가 서점에 찾아온다. 대부분 고물상으로, 폐지를 수거하다가 책을 따로 빼서 중고서점에 파는 것이다. 나머지 두 서점에서는 납품하는 업자를 보기 어려웠다.
  
중고서점들을 보니, 자기가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중고서점을 개업하려고 한다면 대번에 말아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지 가격에 사서 책 정가의 40-50% 가격으로 팔면 이익이 아니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서점을 열었다가는 가게 보증금도 날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시나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잘 되는 중고서점의 조건을 골고루 갖춘 곳이 <알라딘 중고서점>이다. 알라딘 중고서점 위치를 보면 서울에서는 지하철 역 출구 바로 옆에 있고 그 외 지역에서는 대형 마트 안에 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 역 근처에 상가나 주택단지가 있지만 경기권에서는 전철역과 인구 밀집 지역이 비교적 멀기 때문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은 일단 접근성에서 먹고 들어간다.
  
내가 보기에 서울대 근처에서 중고서점이 될 만한 위치는 신림역 출구, 서울대입구역 출구, 낙성대역 출구, 이렇게 세 곳인데 이미 두 곳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들어와 있다. 흙서점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비해 이용하는 데 약간 불편하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므로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운영될 것이다. 나중에 낙성대 역 쪽으로 알라딘 중고서점이 들어온다면 현재 흙서점이 있는 곳이 될 것이다.
  
  
(201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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