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잘못 사용하는 것 같다.
일단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말부터가 상당히 신비롭다. 다른 요소들의 개입이 없는 나는 무엇인가. 진공 상태에 있는 구형인 완전탄성체 같은 건가. 입자물리학에서는 그런 게 가능할지 모르는데 사람은 그런 식으로 분석하기 힘들다. 어떤 사람에게서 성장과 생활에 관한 요소를 제거하면 본래의 모습이 남는 것이 아니라 거의 아무 것도 안 남게 될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다”라는 대사는 자기 환경이 너무 좋아서 원치 않는 이성이 자기에게 꼬이는 것이 싫다는 뜻이다. 부모가 재벌이라서 자기한테 이성들이 자기를 보지 않고 자기 부모의 재산을 보고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든지, 외모가 굉장히 출중해서 이놈저놈 똥파리가 꼬이는 것이 귀찮아서 하는 말이다. 당연히, 쥐뿔도 없는 사람들이 할 만한 말이 아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대사는 낭만적인 것이지만, 실제 세계의 평범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일 뿐이다. 나에게 별반 매력적인 요소가 없고 노화 등으로 인해 매력 요소가 앞으로 더 감소할 것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것 신경 안 쓰고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것이니 말이다. 요행을 바라는 것은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이니 비난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분수를 알고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해야 할 것이다.
내가 그와 비슷한 장면을 영화에서 보았던 것 같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이 그랬다. “야, 네가 나 좀 좋아하면 안 되냐? 네가 나 좀 좋아할 수도 있는 거잖아? 어? 그래 안 그래?” 아니다. 최민식은 반대로 말했다.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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