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5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

   

10년 전 내가 학부를 다닐 때, 서양 철학의 시대는 끝났고 동양 철학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서구의 자연관과 동아시아의 자연관을 비교하며 자연에 투쟁적인 서양 철학이 현대 사회에 문제를 일으켰으므로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한 동양 철학이 그 대안이라고 했다. 그들이 근거로 제시한 건 서구 사람들이 말 몇 마디 험하게 한 것과 동아시아 사람들이 예쁜 문구 몇 개 만든 것이었다. 그 때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일부 동양철학 교수들도 그런 멍청한 소리를 하던 시절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집 주변에 등 굽은 소나무가 몇 그루 있고 새가 짹짹 울고 다람쥐가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살만한 곳에서 사는 것이다. 멧돼지가 산에서 튀어나와서 농작물을 다 헤집어놓고 호랑이가 갓난아이를 물어가고 맹금류가 가축을 공격하고 늪지에서 튀어나온 아나콘다하고 코브라 트위스트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인간이 사람 손 타지 않은 원시림에서 인간이 야생 동물처럼 사는 것이 아니며 생존을 위해 자연과 투쟁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정도로 정돈된 자연을 적절히 이용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면 자연을 이미 어느 정도 개발해서 먹고 살만한 상태인 것이다.

신석기 시대 수준의 농사만 짓기 시작해도 해당 지역의 생물 종은 급감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몇 가지 작물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태워 없애니 인간이 키우지 않는 생물들은 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숲에 불을 지르고 늪을 메우며 농경지를 만들고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모두 환경 파괴다. 동아시아 사람들이 그런 환경 파괴를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미 몇 천년 전에 환경을 파괴해서 사람이 살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은대에는 중국에도 밀림이 있었고 심지어 코끼리도 살았다. 고대 중국 사람들이 밀림을 없애면서 코끼리는 중국 남부 지방으로 밀려났고 강남을 개발하면서 농경지와 주거지가 확대되며 코끼리의 서식지는 줄어들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좋아한다는 동아시아 사람들은 그렇게 코끼리를 멸종시켰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중국 고대 문헌에 살벌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때는 밀림이 중국을 뒤덮을 때이고 문헌에 슬슬 예쁜 문구가 등장하는 시기는 밀림이 작살나고 사람이 살만해지기 시작할 때라는 점이다. 즉, 동아시아 사람들이 태평한 소리를 문헌에 남겨놓은 것은 그들이 자연 친화적이어서가 아니라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살만한 환경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동양 철학이 서양 철학의 대안이라는 일부 동양 철학 교수들은 동양사에 대한 상식도 없으면서 철학책에 나오는 몇 마디가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문명이 만들 수 있다는 몽상을 한 것뿐이다.

지금도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사람들은 전원주택을 만들며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인구밀도 낮고 녹지가 조성된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동아시아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 그렇기 때문이다. 서구 사람들도 먹고 살려고 자연을 파괴한 것이지 자연을 보면 기분이 나빠서 그랬겠는가. 그까짓 말 몇 마디 예쁘게 만드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동양적 가치를 운운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 정도 문구 정도는 쉽게 만들어줄 수 있다.

(20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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