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논문 심사가 임박한 어느 석사과정생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저를 말리지 않았을까요? 분명히 선생님께 석사 논문 계획서를 보여드렸는데 선생님은 일단 생각한대로 써보라고 하셨어요. 제 눈에도 이러면 안 되겠다 싶은데, 그렇다면 선생님 눈에는 그런 게 더 분명히 보일 거잖아요. 그런데 왜 선생님은 말리거나 수정해주시지 않고 제가 생각한 대로 해보라고 하셨을까요?”
선생님을 5년 간 본 나는 세 가지 이유에서 그런 것 같다고 추측했다.
(1) 나름대로 괜찮다고 판단해서
(2) 어떤 연구가 가망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도 연구자의 능력이라서
(3) 학생을 뜯어말려서 더 좋은 결과를 산출해도 막상 학생은 지도교수를 원망할 수 있어서
모든 연구는 한정된 자원 내에서 수행되며 연구자의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연구비가 무한정 들어가거나 연구 기간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면 그 연구는 망한 것이다. 수행 가능한 연구라고 하더라도 연구 가치가 없거나 너무 사소한 결론을 얻을 뿐이라면 그런 연구는 하면 안 된다. 그러니 연구 계획을 짜는 능력도 연구자의 능력에 포함될 것이다. 지도 학생이 연구 계획을 다 짠 한 후에야 지도교수님이 세부 사항을 조정하는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유는 지도교수가 학생이 이상한 연구를 하려는 것을 뜯어말려서 더 좋은 결과를 산출해도 학생이 지도교수를 원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도 학생이 이상한 주제나 낯선 주제로 석사 논문 쓰려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리는 교수들이 있는데, 그런 교수의 지도학생들 중 일부는 정상적인 기한 안에 멀쩡히 학위를 받고도 딴 소리를 하기도 한다. 자기가 원래 쓰려던 주제는 다른 거였는데 지도교수가 말려서 주제를 바꾸었다면서, 원래대로 쓰고 싶었던 주제로 논문을 썼으면 더 좋은 논문이 나왔을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나는 다른 학교 대학원생 중에서 그런 사람을 실제로 보았다. 그런 학생들이 나올까봐 내 지도교수는 지도 학생이 이상한 주제를 들고 와도 우려만 표명하고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석사 논문 쓸 때 계획을 무리하게 잡고 시간을 많이 허비했는데도 지도교수님은 우려만 완곡하게 표하시고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으셨다. 나 혼자 그렇게 헛짓거리를 하면서 그만 두지 않고 버틴 것을 보면, 나는 지도교수의 지시에 따라 논문 주제를 바꾸고 제때 졸업했다고 해도 분명히 뒤에서 딴 소리 하고 돌아다녔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반성도 많이 하고 성격도 더 순해지고 연구나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지도 교수님의 지도 방식에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 같다.
(2017.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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