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2

분야별 전공자들의 발언권

     

세상에는 여러 전문 분야가 있는데, 사람들이 각 분야를 모두 동등하게 전문적인 분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분야에서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다른 분야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을 하더라도 존중받는데, 어떤 분야에서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자기 분야에 대해 조심스럽게 의견을 표명해도 일반인들이 개소리로 치부하기도 한다.
   
내가 과학 분야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농담을 섞어서 말하자면 과학 분야에서 전공자의 의견이 가장 존중받는 분야는 아마도 이론물리학자 쪽일 것이다. 이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만 하면 다른 분야에 대해 생뚱맞은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e.g. 스티븐 호...). 심지어 이론물리학 하는 사람들이 실험물리학 하는 사람들보고 “실험은 머리 나쁜 애들이 실험하는 것”이라고 놀린다더라 하는 식의 농담을 해도 일반인들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과학 분야에서 전공자의 의견이 가장 무시 받는 분야는 아마도 진화심리학일 것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다른 심리학 전공자한테서도 “진화론이 과학인 건 맞는데 진화 심리학이 과학이 맞느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고 한다. 인접 분야 전문가가 그러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부당하게 욕을 먹는다. 물리학의 경우, 『시크릿』처럼 양자역학을 인용하여 개소리를 하는 책이 있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문과 수준의 물리학 지식을 겨우 아는 사람이 양자역학을 비판하는 책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사 어떤 미친 놈이 정말로 그런 책을 쓴다고 해도 아무 관심을 받지 못해서 묻힐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이와 반대다. 진화심리학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해당 학문을 근거 없이 비판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며, 그 책이 마치 어떠한 대단한 함축이라도 지닌 듯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소개되기도 한다.(e.g.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인문학 전공자 중에서 종사자의 의견이 가장 존중받는 분야는 아마도 문학 쪽일 것이다. 아무 분야에 대해 아무 근거 없이 아무 말이나 해도 사람들이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는다. 전공자뿐만 아니라 소설가처럼 관련 업종 종사자들의 의견까지도 과도하게 존중받는다.
   
소설가가 소설을 잘 쓰면 그건 그냥 소설을 잘 쓴 것이고 거기서 끝나야 하는데, 언론에서는 무슨 일만 있으면 소설가한테 세상만사를 다 물어본다. 대부분의 소설가는 다른 분야에 별다른 전문성이 없으므로 그들이 내놓는 대답이라는 것도 보통은 소설 많이 읽은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하는 대답과 별반 다르지도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조차도 그렇게 귀 기울여들으며 소설가 누가 이런 말을 했다고 인용하기를 즐겨한다. 예술가를 잘 대접하는 건 좋은 일이고 권장할 일이지만, 왜 소설가를 마치 대단한 지식인이라도 되는 양 떠받드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인문학 전공자 중에서 전공자의 의견이 가장 무시 받은 분야는 철학일 것이다. 전공자들이 자기 분야에 대해 맞는 이야기를 해도, 철학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말귀도 못 알아먹는 사람들이 그런 건 진정한 철학이 아니라고 우긴다.
  
  
(201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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