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8

기말고사 답안지로 퍼포먼스 하기



어떤 교수가 기말고사를 보기 전에 학생들에게 답안지 작성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글 쓰는 도구는 연필이든 볼펜이든 상관없다. 글을 고칠 때는 교정부호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수정액이나 테이프를 사용해도 되고, 여의치 않으면 칼이나 총기를 사용해도 좋다. [...] 그리고 주어진 주제나 자신이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어버려도 좋다.”

그랬더니 어떤 학생이 정말로 답안지를 찢었다고 한다. 답안지를 찢어서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 학생은 찢어진 답안지에 접착식 메모지를 붙여서 제출했다. 메모지에 적힌 글은 대략 다음과 같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정상적인 판단’을 통해 도출된 ‘정답’만을 마치 기계에서 뽑아내듯 강요하는 세상을 거부하고, 자신의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스스로 세운 방식에 따라 자기만의 해답을 발견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가치이다.


이에 나는 제도가 인간에게 점수를 부여하고 마치 쇠고기 등급 매기듯 인간을 재단하기 위한 수단인 ‘답안지’를 찢어버림으로써 인간이 바로 그러한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학기 동안 대학생이 되어 공부하며 내가 얻은 깨달음은 바로 이 찢어진 답안지가 잘 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찢어진 답안지를 내가 찾은 ‘가치’에 관한 나의 ‘해답’으로 제출한다.








학생은 자기가 “공부하며 얻은 깨달음”을 찢어진 답안지가 잘 담고 있다고 썼는데, 무엇을 깨달았다는지 모르겠다. “제도가 인간에게 점수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러한 예속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냥 시험 보러 오지 않았으면 되었을 것이다. 이 참에 아예 대학을 그만두는 것은 어떨까? 시험 보는 중에 그러한 것을 깨달았다고 해도, 그 깨달음을 답안지에 잘 적든지, 아니면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하거나 찢어서 제출했으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학생은 굳이 시험장까지 나와서 이런 유치한 쇼를 했다.

그 학생은 기말고사 답안지로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정해진 고사장에 도착했을 것이다. 고사장에 오기 위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했든 자가용을 이용했든, 그 학생은 수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확하게 자신의 업무를 처리한 덕을 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계에서 뽑아내듯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 학생은 “‘정상적인 판단’을 통해 도출된 ‘정답’만을 마치 기계에서 뽑아내듯 강요하는 세상을 거부”한다며 답안지를 가지고 육갑을 떨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교수로서 그런 일을 당했다면 ‘아, 지겨워. 또 철학과 출신 미친놈이네’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해당 수업의 교수는 그 학생의 글을 읽으면서 “영화 <동주>의 송몽규가 윤치호에게서 받은 상패를 내동댕이쳐버리는 장면”과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칼로 끊어버린 알렉산더”가 떠올랐다고 한다. 철학과 출신 미친놈의 객기가 어떻게 송몽규나 알렉산더의 일화로 이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교수가 수업에서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은 대체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법이니,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무엇을 배우고 어떤 토론을 했을지 대충 알 것 같기도 하다.

(201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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