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12

주인의 애정이 애완동물 서열에 미치는 영향

  
  

동물의 세계에서 물리력이 강한 놈이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고양이들의 세계에서도 그러한 것이 당연한 것 같고, 내가 집에서 고양이들을 몇 년 간 관찰한 바로도 그러하다. 그런데 최근 우리집 고양이들의 관계가 달라졌다.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하는 동생에게서 새끼 고양이를 받아온 이후의 일이다. 군부대의 잔반을 먹던 고양이가 낳은 새끼 고양이였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집에는 고양이들이 살았다. 할머니께 밥을 얻어먹은 누런 고양이가 눌러앉아 새끼를 낳고 약한 놈이 떠나며 집에 사는 고양이들의 개체수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고양이들은 어머니의 미움을 받았지만 그래도 밥을 얻어먹으면서 집에 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고양이를 안 좋아했고 고양이털 알레르기까지 있다. 동생은 그런 어머니에게 강원도에 면회하러 와서 새끼 고양이를 받아가라고 했다. 어머니는, 집에 있는 고양이도 지겨운데 강원도까지 가서 고양이를 받아와야 하느냐며 불만이 가득했다. 그런 어머니가 동생 면회 가서 새끼 고양이를 받아와 며칠이나 집 안에서 키운 것은, 그 고양이가 예뻤기 때문이다. 우리집에 몇 년 전부터 산 고양이들은 죄다 누런 빛깔인데, 동생이 보낸 고양이는 눈처럼 하얀 색이었다. 아는 사람한테 고양이 사진을 찍어 보내니 페르시안 뭐에 뭐가 섞인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는 고양이가 원래 있던 고양이들과 달리 예쁘다며 “화천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화천에서 왔다고 붙인 이름이다. 우리집에 산 고양이 중 이름이 붙은 건 화천이가 처음이다. 그 이전부터 살던 고양이들은 죄다 ‘이놈’, ‘저놈’, ‘누런놈’, ‘검은놈’, ‘못 생긴놈’이라고 불리었다. 못 생긴놈은 못 생겼다는 이유로 어머니께 미움을 받았다. 지금도 다른 고양이는 이름이 없다.

동생이 보낸 고양이는 당시는 젖도 완전히 떼지 않은 상태였다. 집 안에서 며칠 간 우유를 먹이며 키웠다. 고양이를 문 밖에 내놓았을 때 어머니는 원래 있던 고양이들이 새끼 고양이한테 해코지를 할까봐 걱정하셨다. 그래서 수시로 현관문 앞에 나가 새끼 고양이를 지켜보셨고 원래부터 살던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한테 접근하려고 하면 “야, 이 새끼들아, 화천이 건들면 건강원에 다 팔아버릴 줄 알아 이 주책없는 것들아!”라고 소리 치셨다. 평소에도 어머니를 무서워하던 고양이들은 어머니만 보면 금방 어디론가 달아났다. 어머니의 비호 아래 새끼 고양이는 조금씩 자랐고 언젠가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앞발로 어른 고양이들의 얼굴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의 앞발에 맞은 어른 고양이들은 그냥 슬금슬금 새끼 고양이를 피했다.

화천이는 먹성이 좋았다. 아침에 밥을 먹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밥을 달라고 현관문 앞에서 울었다. 틈틈이 그렇게 울 때마다 어머니는 사료를 주셨고 그렇게 다른 고양이의 식사 시간도 늘어났다. 원래 어머니는 화천이 밥만 주고 화천이 밥그릇에 다른 고양이가 접근하면 소리를 쳤는데, 결국 다른 고양이에게도 밥을 약간씩 주었다. 아침 한 번이었던 고양이들의 식사시간은 화천이가 들어온 후 하루 두세 번으로 들어났다.

화천이가 들어오기 전에는, 고양이들이 현관문 앞에서 배고프다고 울면 어머니는 문을 열고 나와 고양이들한테 신발을 던지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미친 고양이 새끼들아, 사람도 밥을 안 먹었는데 너네가 왜 밥을 먹니? 이 주책없는 것들아!”라고 하셨다. 그래서 집 안에서 아침에 내 목소리나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면 고양이들이 울고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면 고양이들이 울음을 멈추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화천이만 울고 다른 고양이들은 울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신기한 것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셨다. 어머지는 화천이가 사람 말을 알아듣고 심지어 악수도 한다고 주장했다. 마당에서 어머니는 “화천아 화천아” 하고 화천이를 불렀다. 화천이는 물끄러미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화천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한 손을 내밀며 “화천이 악수~”라고 하자, 화천이는 어머니를 멀건이 쳐다만 보았다. 여러 번 악수를 제안했지만 화천이는 응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화천이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렇다”면서 바닥을 디딘 화천이 앞발을 손으로 붙잡고 “화천이 악수~”라고 하면서 강제로 악수를 했다.

그 다음날 어머니는 나한테 진짜 화천이가 악수하는 걸 보여주겠다고 하시며 또 화천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악수를 청하셨다. 역시나 화천이는 멀건이 보기만 했다. 어제처럼 강제로 악수를 하자 화천이는 어머니 손에서 앞발을 쏙 빼서는 어디론가 갔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유, 화천이가 일주일 내내 기분이 안 좋네”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어느덧 고양이 세계의 주도권은 박힌 돌(누런 고양이)에서 굴러온 돌(화천이)로 넘어갔다. 이미 화천이가 청소년 고양이일 때부터 그런 변화가 나타났다. 이전에는 덩치 크고 힘 센 놈이 권력을 잡았는데, 화천이가 오고부터는 화천이가 크게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권력을 잡게 되었다.

이제 화천이는 어른 고양이가 되었고 확고부동한 대장 고양이가 되었다. 화천이는 다른 고양이들을 끌고 다니며, 어디 갈 때도 항상 화천이가 앞장서고 화천이 밥그릇에 있는 밥은 어떤 고양이도 건들지 않는다. 어쩌다 밥을 세 그릇에 나누어주지 않고 한 그릇에만 주면 화천이는 당당하게 밥을 먹고 다른 두 마리는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2015.01.11.)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초등학교 셔틀버스의 전원주택 진입로 출입을 막다

전원주택 진입로에 깔린 콘크리트를 거의 다 제거했다. 제거하지 못한 부분은 예전에 도시가스관을 묻으면서 새로 포장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몇 배 두꺼워서 뜯어내지 못했다. 그 부분을 빼고는 내 사유지에 깔린 콘크리트를 모두 제거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