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12

한국에 스티브 잡스가 나와 봤자 소용없다

아산서원과 소하서원 등 몇몇 서원에서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는 고전 교육과정을 진행한다고 한다. 서원에서 어떻게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다. 그런데 기사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가 주축이 돼 내년 3월 문을 여는 건명원은 내일을 준비하면서 뛰어노는 울타리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학교나 스펙을 보지 않고 면접만으로 선발한다.

배 교수는 “모두가 스티브 잡스를 원하지만 우리나라 구조상 어렵다”며 “재능은 있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을 한 명이라도 발견하면 9명의 교수가 1년 동안 가르쳐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학에서 다양한 것을 가르치지 않아서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가 나오지 않는 것인가?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가 나오려면 자신의 전공 이외의 여러 분야의 교양이나 고전에 관심을 가지게 해야 하고 이것이 창의성이나 통찰력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를 떠받드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인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맞나?

일본 소니 공장을 방문한 스티브 잡스는 소니 직원들이 단체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소니 창업주가 “직원들이 단체복을 입으면 직원들이 화합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하자 스티브 잡스는 소니 단체복을 제작한 디자이너에게 애플 단체복을 주문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애플 직원들에게 단체복을 보여주자 직원들은 야유를 보냈고, 결국 스티브 잡스는 검정색 목티 몇백 벌을 받아와 죽을 때까지 그 옷을 입었다.

한국에서 재벌 회장이 스티브 잡스 같은 결정을 내린다면 누가 회장에게 야유를 보낼 것인가? 이건희가 검정색 목티를 좋아했다면 삼성맨들은 모두 검정색 목티를 입고 다녔을 것이고, 삼성 본사에서 모두가 검정색 목티를 입고 다녀서 그 근처는 마치 미래 도시처럼 보였을 것이다. 검정색 목티가 삼성맨의 상징이 되면서, 한국 사회에 검정색 목티 열풍이 불었을지도 모르겠다.

삼성 신입사원은 이건희 자서전을 읽고 카드섹션을 하며, 현대 신입사원은 해병대 캠프를 간다고 한다. 이는 조직에 순응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직원이 상사의 잘못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다. 스티브 잡스는 독선적이고 지랄 맞기로 유명하지만 애플은 직원들에게 그런 짓을 시키지 않았다.

어떤 천재라도 항상 올바른 판단만 할 수는 없다. 의사결정권자가 잘못된 판단을 할 때 그를 돕는 사람은 그에게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직원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뿐 아니라 의사결정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이끄는 것도 조직의 역량이다. 애플 직원들은 스티브 잡스의 소소한 잘못된 결정(검정색 단체복)을 막을 수 있었지만, 삼성경제연구소는 이건희의 중대한 잘못된 결정(자동차 산업)도 막지 못했다. 이건희는 자동차를 매우 좋아했고 결국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어 4조 원을 날렸다.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 태어나면 그 재능을 얼마나 쓸 수 있을까? 어쩌면 한국의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스티브 잡스들이 조직의 하층부에서 별 볼일 없이 지내거나, 조직의 상층부에서 이상한 결정이나 하며 조직의 경쟁력을 깎아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키우겠다고 하기 전에 이 점부터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링크: [경향신문] 다시 서원이 뜬다

( 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411282143025 )

(201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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